[연구필요성]
염색체 말단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은 유전체의 보존과 종의 연속성에 아주 중요하고, 많은 경우 텔로머레이즈 효소가 텔로미어를 만들어 염색체 말단을 보호한다.
인간의 암을 포함하여 다양한 경우에 텔로머레이즈 없이도 염색체 말단을 보호 유지하는 기전이 있음이 밝혀졌고 이를 ALT(Alternative lengthening of telomeres, 대안적 텔로미어 유지기전)라 부른다.
아직까지 ALT의 기전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ALT의 특성을 분석하는 일이 아주 중요하고 필요한 연구이다. 특히 포유류에서의 특성 분석이 절실하였다.
[연구성과/기대효과]
포유류 세포 모델 최초로 두 가지 유형의 대안적 텔로미어 유지 기전 (alternative lengthening of telomeres, ALT라고 부름)을 확립하고 최첨단 생물학 기법으로 (멀티-오믹스라고 부름) 비교 분석하여 특성을 규명함
두 가지 서로 다른 ALT 유형에서의 텔로미어 유지 기전을 구별할 수 있는 유전체 및 후성유전체 특성을 규명하여 암 진단기법 확립 기반을 제공
노화 세포와 암세포의 가소성 (유연성)에 대해서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
본 연구내용이 발표된 NAR (Nucleic Acids Research) 학술지는 유전체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학술지임.
[연구결과]
Distinct characteristics of two types of alternative lengthening of telomeres in mouse embryonic stem cells.
Sanghyun Sung1, Eunkyeong Kim1, Hiroyuki Niida, Chuna Kim, Junho Lee
세포가 복잡한 생명 현상을 발현하는데 가장 근간이 되는 것은 생명의 설계도라 할 수 있는 유전체(genome)이다. 각각의 생물종은 고유한 유전체를 가지고 있으며, 유전체는 생물체의 발달, 기능, 특성 등을 결정한다.
유전체를 안정적으로 보호하고 유지하는 것은 유전 정보를 보존하고 세포의 정상적인 기능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며, 유전체의 불안정성은 다양한 돌연변이의 발생과 질병의 발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진핵생물의 경우, 선형 염색체의 형태로 유전정보를 조직화해서 보관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세포는 선형 염색체는 끝부분을 완전히 복제할 수 없고 분열함에 따라 일정 부분의 DNA가 사라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끝부분의 DNA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사라지게 되면 염색체 내부의 유전정보 또한 사라질 위험이 있으므로, 세포는‘텔로미어’라는 분자 타이머를 통해 적절한 분열 횟수를 감지한다.
텔로미어는 선형 염색체의 끝부분을 구성하고 보호하는 구조를 지칭한다. 남아있는 세포 분열 횟수의 감소 과정은 시간의 흐름, 다시 말해 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여겨져 왔으며, 많은 연구자들이 분열 타이머를 되감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텔로머레이즈(telomerase)라는 효소는 생식 세포와 줄기 세포와 같이 지속적인 세포 분열이 필요한 세포에서 작동하는 효소로 대표적인 텔로미어 유지 기전의 중심이 된다. 이 효소는 텔로미어의 끝부분에 특정한 염기서열 (포유류의 경우 TTAGGG)을 반복적으로 추가하여 DNA의 길이 감소를 방지한다. 세포 타이머와 이를 되감을 수 있는 효소의 발견은 2009년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게 했다.
그러나 텔로머레이즈를 사용하여 타이머를 되감았을 때 세포가 계속 분열하며 유익한 효과만 가져올까? 대부분의 암세포(85%)에서 텔로머레이즈 활성이 나타나는 것이 발견되었으며, 정상 세포에서도 텔로머레이즈를 과도하게 발현시키면 암세포화할 수 있다. 따라서 부작용 없이 유익한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텔로미어 타이머의 작동 메커니즘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다른 한편, 자연에는 텔로머레이즈를 사용하지 않고도 텔로미어를 유지할 수 있는 기전이 있는데, 이를 대안적 텔로미어 유지기전 (Alternative Lengthening of Telomeres, 줄여서 ALT) 이라 부른다. 텔로머레이즈 유전자가 존재하지 않고 ALT를 통해 텔로미어를 유지하는 종도 있고, 원래는 텔로머레이즈를 사용하지만 텔로머레이즈 유전자가 망가졌을 때 ALT를 사용하는 종도 있다. 이러한 전략 변환 과정은 효모와 예쁜꼬마선충 모델에서 특히 많이 연구되었으며, 최근 지구상의 전 생명체를 대상으로 수행되는 게놈프로젝트 덕분에 ALT를 활용하는 새로운 종이 새롭게 밝혀지고 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인간의 암세포 중에서도 텔로머레이즈 활성을 가지지 않고 ALT를 이용해 텔로미어를 늘려서 분열 능력을 유지하는 사례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아직까지 ALT 기전에 대한 완전한 이해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많은 생명체에서 백업으로 존재하다가 암, 노화, 생식줄기세포 고갈 등 세포의 위기 상황에서 새로운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깊은 이해가 필요한 현상이다.
오랜 기간 방법론의 한계로 인해 ALT가 관찰된 인간 암세포를 포함한 포유류 세포에서는 TTAGGG의 단순반복서열로 이루어진 텔로미어만 관찰되었다. 이전 연구에서 본 연구팀은 생쥐 배아 줄기 세포에서 두 가지 유형의 ALT 세포 라인을 확립했다. 이 두 유형의 차이점은 텔로미어를 구성하는 서열에 있다. 유형1은 비-텔로미어 서열(mouse template for ALT를 줄여서 mTALT로 명명)을 염색체 끝부분에 가지고 있으며, 유형2는 오로지 단순반복서열로만 텔로미어를 구성하고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서울대 이준호 교수 연구팀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노화융합연구단 김천아 박사와의 협업으로 멀티오믹스 접근법(유전체, 전사체, 단백질체, 후성유전체 분석을 총체적으로 진행하는 연구 접근법)을 사용하여 두 가지 다른 운명의 ALT 기전과 연관된 분자 기전을 고해상도로 규명하였다.
가장 흥미로운 발견은 전사체 및 단백질체 수준에서 관찰했을 때 유전자 발현의 변화의 특징만을 보아도 각 유형의 ALT의 핵심적인 성격을 예측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는, 유전자 발현의 측면에서 유형1과 유형2 ALT 세포들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각각 염색질 리모델링(chromatin remodelling)과 DNA 수리(DNA repair) 관련 유전자 발현 변화였다.
예상치 못한 연구결과도 도출할 수 있었는데, 구체적으로는 ALT 분야에서의 오랜 질문 중 하나인 텔로미어의 3차원적인 구조와 ALT 활성화 간의 상관관계에 관한 결과였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던 가설은 텔로미어가 보존의 위기를 겪으며 느슨한 구조를 가지게 됨으로써 ALT에 관여하는 단백질들이 편하게 접근하면서 ALT가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유형1 ALT 세포의 텔로미어는 ALT 활성화 후에 그전보다 더욱 닫힌 구조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발하게 전사가 일어나서 텔로미어로부터 전사체를 생산했다. 반대로 유형2 ALT 세포는 일반적인 가설과 동일하게 더욱 느슨해진 텔로미어 구조를 가지고 있었지만 텔로미어 전사체는 관찰되지 않았다. 이러한 발견은 ALT가 활성화되고 유지되는 과정에 다양한 경로가 존재할 수 있음을 의미하며, 그 다양성에는 유전체 및 텔로미어의 구조적인 차이와 유전자 조절 네트워크의 차이가 포함된다.
생쥐 배아 줄기 세포에서 두 가지 유형의 ALT가 발견되었고 상반된 특징들이 나타난다는 결과는 자연스럽게 인간 암세포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왜 아직까지 인간 암세포에서는 유형1 ALT에 해당하는 경우가 발견되지 않았을까? 아마도 유전체 분석을 기반으로 유형1 ALT를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없었기 때문일 수 있다. 본 연구에서 밝힌 것처럼 ALT의 유형에 따라 핵심적으로 기능하는 유전자가 다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유전자를 타겟하여 치료법을 찾기 위해서는 인간 암세포에서도 ALT 유형을 정확히 구분하는 것이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는 포유류 모델에서 두 유형의 ALT를 밀접하게 비교한 최초의 사례로서, 동일한 출발점을 가진 세포에 발생한 세포 노화, 즉 세포 수준의 생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경로의 가변성에 대한 통찰을 제시했다. 이러한 결과는 세포가 운명을 바꾸는 가장 극적인 사례인 리프로그래밍이나 암 발생 과정에 대해서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줄 것이다.
[용어설명]
- ○선형 염색체 말단을 구성하고 있는 핵산-단백질 복합체를 지칭하며, 일반적으로 단순한 반복 서열로 이루어져 있다. 세포 분열마다 일부의 DNA가 소실되는데 텔로미어는 유전 정보를 대신하여 소실되는 보호 역할을 수행한다. 텔로미어 길이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짧아지면 세포가 더 이상 분열하지 않는 세포 노화 상태에 들어간다. 많은 경우 텔로머레이즈라고 하는 효소에 의해 단순반복서열이 보충되어 세포의 분열 능력을 유지한다.
- ○텔로머레이즈를 사용하지 않고 텔로미어 길이를 유지하는 기전을 통칭하여 이르는 용어이다. 기본적으로 상동재조합(homologous recombination)에 기반한 기전으로 텔로미어 길이를 늘여준다고 알려져 있으며, 약 15% 정도의 인간 암세포에서 발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