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학생, 교직원, 동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서울대학교가 개교한 지 78주년이 되는 뜻깊은 날입니다. 개교기념일을 맞아 서울대 모든 구성원께는 물론, 우리 사회 곳곳에서 서울대학교의 긍지를 드높여온 서울대 동문 여러분, 그리고 따뜻한 격려와 날카로운 질정으로 서울대의 발전을 늘 성원해주시는 국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개교 이래 서울대학교는 줄곧 대한민국의 성장을 견인해 왔습니다.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고, 학문의 연구를 통해 경제와 사회의 발전을 추동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했습니다. 변화하는 시대에 걸맞게 대학의 제도와 운영 방식을 바꾸는 노력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급속한 사회, 경제, 기술적 전환과 불확실성의 증대가 기존의 고등교육 패러다임 자체를 위협하고 있는 지금, 서울대의 전통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면서도 혁신의 동력을 더욱 키워가기 위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위기 속의 기회’라는 말에서처럼 도전을 새로운 가능성으로 바꾸어내는 지혜와 실천 의지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변화의 중심에서 새로운 기회와 가치를 창출할 비전을 제시하는 일, 그 과정이 비록 힘들더라도 흔들림 없이 굳건히 앞장서 나아가는 것이 서울대의 소명입니다.
서울대학교 구성원 여러분,
오늘 개교기념일을 맞아 우리 학교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서울대학교는 1946년 개교 이후 1975년의 ‘종합화’와 2011년의 ‘법인화’를 거치며 현재의 모습으로 성장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학교의 종합화는 교육, 연구, 인프라 등 모든 영역에서 시너지를 창출하겠다는 우리 선배들의 실천 의지를 담은 획기적인 프로젝트였습니다. 종합화 50주년을 곧 맞게 되는 시점에서 우리는 종합화의 취지가 충분히 달성되었는가, 오늘날 우리 세대가 책임져야 할 대학 혁신의 내용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서울대학교의 종합화는 엄청난 양적 성장뿐 아니라 다양한 학문 간의 교육과 연구의 시너지 창출을 가능하게 만든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의 연합대학적 성격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한계도 있어 그 유산이 서울대학교 거버넌스나 운영 관행에 여전히 남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자율성을 확보하지 못한 현실 속에서 거대한 규모로 팽창한 대학은 관료주의적 방식으로 관리되었고, 이로 인해 단과대학별 학과별 칸막이 현상과 중층적, 위계적 운영이라는 결함을 노정하였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고 대학 거버넌스와 운영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기 위해 십여 년 전 서울대학교는 법인화라는 새로운 길을 과감히 선택하였고, 이를 통해 서울대 스스로 내부 혁신을 이루어 나갈 중요한 변환의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러나 서울대의 운영 방식과 관행의 질적인 개선은 여전히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아프게 인식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서울대학교 구성원 여러분,
서울대학교 총장이라는 막중한 책무를 맡으면서 저는 우리 선배들이 일구어 온 대학 혁신의 전통을 계승하고 그 동력을 계속 키워가기 위해 ‘서울대의 대전환’이라는 목표를 설정하였습니다. 이러한 대전환은 ‘자유롭고 역동적인 교육·연구 생태계’, ‘세계로 뻗어가는 개방적 플랫폼’을 지향합니다. 이러한 지향 아래 지금 서울대학교는 교육, 연구, 사회공헌, 대학 운영 제도와 방식, 인프라 등에서 전방위적으로 혁신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먼저, 자유롭고 미래지향적인 교육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전통적인 학문 간 칸막이에 갇히지 않고 창의적·융합적으로 사고하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노력을 다방면으로 경주하고 있습니다. 첨단융합학부 신설에 이어 내년 3월에는 학부대학이 출범합니다. 학부대학은 우리 학생들이 ‘도전과 공감으로 미래를 여는 지성’으로 성장하도록 공통핵심역량, 융합역량, 글로벌역량 교육을 제공하며 향후 모든 서울대 학부생들을 위한 개방적인 고등교육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입니다.
창의성과 융합이 자연스럽게 발현될 수 있는 연구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과학, 기술, 경제, 환경, 안보 등 우리 사회와 세계가 직면한 다양한 영역의 문제들을 다루는 초학제적 융복합 플랫폼들도 하나씩 구축하고 있습니다. 대표적 국가전략기술 중 하나인 양자 연구의 시너지를 위해 양자연구단을 신설하였으며, 앞으로 해외 대학 및 연구소와의 협력을 통해 글로벌 공동연구 플랫폼도 만들 계획입니다. 시흥 캠퍼스에는 첨단 바이오산업 융복합 연구단지를 조성하여 산·관·학 메가 바이오 클러스터를 구축할 예정입니다. 현대한국종합연구 플랫폼 등 개방적 연구 플랫폼 구축에도 박차를 가하겠습니다.
사회공헌의 내용적 혁신을 위한 구성원의 노력과 성과도 지역과 국가, 세계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인구감소와 지방소멸 위기 시대를 맞아 대학연대 지역인재양성 사업단을 설립하여 서울대의 자원을 지역 대학과 공유하고, 지방 학생이 경쟁력 있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디딤돌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국가미래전략원의 역할을 강화하여 정치, 경제, 과학기술, 환경 등 국가적 난제 영역과 관련된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하는 ‘SNU in the World’ 프로그램 등 서울대형 아웃리치 프로그램을 한층 더 내실화함으로써 우리 학생들이 인류를 위한 따뜻한 세계시민으로 성장하도록 힘쓰고 있습니다.
교육, 연구, 사회공헌 영역에서의 이러한 혁신이 더욱 활력 있고 효과적으로 달성되기 위해서는 이를 지원하는 학교의 운영 체제와 방식, 조직문화와 행정지원 서비스 전반의 질적 개선이 수반되어야만 합니다. 특히 예산 편성과 재정 집행의 투명성과 책임성, 사업 평가의 엄정성과 자원 배분의 합리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개선 조치를 실행에 옮기고 있습니다. 행정 업무와 지원 서비스를 뒷받침하는 정보화 인프라와 역량도 인공지능 시대에 걸맞게 빠른 속도로 끌어 올리려고 합니다. 지나치게 중층화된 의사결정 구조, 경직된 관료주의적 조직과 관행, 학문과 행정 단위 사이의 분절화, 편린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각 부처와 제도혁신위원회가 상시적으로 문제를 진단하여 개선 로드맵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서울대학교 구성원 여러분,
대학 거버넌스와 운영 방식의 혁신은 자유롭고 창의적이며 미래를 개척하는 학문 공동체의 토대입니다. 이러한 혁신 목표는 서울대학교를 늘 성원해주는 국민과 후속 세대를 위해 우리가 완수해야 할 소명이며 또 우리에게 주어진 값진 기회입니다. 우리가 지난 역사 속에서 선택해 온 종합화와 법인화의 근본 취지를 생각하고, 이를 미래 사회에 맞게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방법을 모색한다면 서울대의 대전환이라는 목표는 조금 더 빨리 실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서울대의 혁신은 우리 각자 그리고 각 구성단위가 스스로 함께 변화할 것을 요구합니다. 당연히 이 과정은 낯설고 어려움과 불편함도 수반할 것입니다. 저는 신뢰와 소통을 통해 여러분과 함께 그 과정을 헤쳐 나아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우리 사회를 밝히는 집단지성의 산실로서 서울대의 위상을 한층 강화하기 위해 모든 구성원과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설득과 조정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78년의 역사 위에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서울대의 혁신이 서울대 구성원 모두의 자긍심이 됨은 물론, 우리 사회의 앞날을 비추는 등대가 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겠습니다. 서울대의 미래를 향해 우리 모두의 실천 의지를 모아 다 함께 힘차게 전진합시다.
감사합니다.
2024년 10월 14일
서울대학교 총장
유홍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