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학생, 교직원, 동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서울대학교가 개교 77주년을 맞았습니다. 지난 80여 년 동안 국가 발전의 기틀을 잡는데 서울대학교가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애써주신 구성원 여러분, 서울대학교에 성원을 아끼지 않으신 국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이 자리는 제가 서울대학교 총장이라는 영광스러운 소명을 부여받은 후 처음으로 맞는 개교기념식이기도 합니다. 총장에 취임한 후 저는 서울대학교의 미래를 향한 대전환의 걸음을 옮기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교육과 연구, 사회공헌의 틀과 내용을 선제적으로 다시 짜겠다는 다짐을 하고 지난 8개월 동안 대학 혁신을 착실히 진행했습니다.
서울대 구성원 여러분, 그리고 내빈 여러분!
대학 혁신은 시급한 시대적 과제입니다. 첨단 과학기술의 빠른 발전이 인류의 삶의 조건을 전면적으로 바꾸고, 대한민국을 둘러싼 정치경제적 환경의 불확실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기회와 위기가 교차하는 대전환의 시대에 대학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대학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기업은 대내외적 도전에 빠르게 대처하고 있고, 정부는 대학의 담대한 혁신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반면 대학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 초일류 대학들은 오래전부터 대학 혁신을 과감하게 추진해 왔습니다. 저는 최근에 미국 바이오산업을 이끄는 보스턴 클러스터의 핵심 대학인 MIT와 하버드 대학을 방문했습니다.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과 대학의 연구소 1,000여 곳이 관습과 관념에서 벗어나 시너지를 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는 대학이 캠퍼스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주체들과 연결되어 이전과 다른 미래를 상상하며 혁신을 추구해 이룬 성과라 할 수 있습니다.
미래 글로벌 일류 대학의 위상은 창의성과 융합에 기초한 혁신을 얼마나 절박하게 실천했는가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서울대학교는 현재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얼마나 절박합니까?
대학 혁신의 출발점은 교육 혁신입니다. 연구, 사회공헌과 국제화, 재정, 행정 등 모든 영역에서의 전환은 교육 혁신에서 출발합니다. 현재 추진 중인 서울대학교 융복합연구플랫폼도 탄탄한 기본기와 경쟁력을 갖춘 인재가 길러져 교육과 연구 간의 선순환이 있어야 작동할 수 있습니다.
뛰어난 학생들이 입학해 졸업장을 인생의 훈장처럼 받고 나가는 서울대학교가 아니라, 교육을 통해 스스로 발전하고, 그 과정에서 길러진 새로운 감각, 생각, 지식으로 사회에서 더 큰 성취를 이루게 해주는 “서울대 교육”이 필요합니다. 비판적 사고를 하며 기존 관념과 질서에 도전하는 지성이자 이웃의 아픔을 해소하고자 노력하는 잠재적 리더, “서울대 인재”를 길러야 합니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어떤 환경에서 변화할 수 있을까요?
그 해답은 “서울대 교육”이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고 소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가능합니다. 다양한 배경과 역량을 가진 학생들이 어떤 경계에도 구애받지 않고 토론하고 논쟁하고 서로에게 배울 수 있는 환경을 통해서만 “서울대 인재”가 나올 수 있습니다. 서울대형 학부대학과 기숙대학은 모두 융합과 통합의 열린 교육 환경을 마련하려는 오랜 숙의의 결과입니다.
2024년 3월 첨단융합학부가 출범합니다. 이를 계기로 전공 간 장벽을 넘어 토론과 협업을 통해 공통핵심역량을 육성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서울대형 기숙대학 프로그램의 개발을 위한 ‘Living and Learning’ 사업도 시범 운영 중입니다.
이와 함께 추진하는 우리 모두의 공간 ‘SNU 커먼스(Commons)’도 같은 목표를 위한 것입니다. 대학의 중심부를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미래인재 육성의 공간으로 만들겠습니다. 행정관을 학생들을 위한 열린 공간으로 재편하여 ‘SNU 커먼스’의 구심적 역할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중앙도서관은 라이브러리와 아카이브와 뮤지엄이 통합된 형태인 라키비움, 즉 첨단미디어 장비를 갖춘 학습, 문화, 예술, 전시의 체험복합공간으로 조성하겠습니다.
서울대가 새롭게 구축하는 융복합연구플랫폼은 자연과학, 공학, 의학, 인문사회, 문화예술분야 등이 모두 참여하여 세계의 변화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과학기술의 진보를 선도하는 초학제적 혁신 생태계를 지향합니다. 대학 내 경계를 허물고, 외부와의 협업을 안정적으로 실행하는 제도적 기반과 연구 생태계를 반드시 구축하겠습니다. 의학·바이오, 인공지능, 양자컴퓨터, 이차전지를 위시한 핵심 분야에서 대한민국의 재도약과 번영의 기반을 마련하는 일에 서울대가 앞장서겠습니다.
사랑하는 서울대학교 구성원 여러분!
우리가 지향하는 교육과 연구, 글로벌 공헌의 혁신은 구성원의 자발성과 창의성이 자유롭게 발현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대학 행정 및 재정 거버넌스 토대 위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서울대학교는 지난 6월 국가 고등교육 생태계와 서울대학교의 혁신을 위해 ‘제도혁신위원회’를 상설 기구로 설치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대학 사회의 혁신을 가로막는 불합리한 규제를 해소할 실질적 대안을 서울대 차원에서 제시할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 학교의 행정체계와 운영방식부터 과감히 바꾸어 나아갈 것입니다. 특히 기존의 복잡하고 경직된 칸막이형 규제 행정의 틀을 깨고, 행정 조직의 유연화, 업무 체계의 단순화와 분권화를 이루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시급합니다. 아울러 행정인력의 근무동기를 북돋아 미래의 대학에 걸맞은 전문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적극 투자해야 합니다. 신뢰와 자율 그리고 책임성을 기반으로 하는 유능하고 기민한 대학 거버넌스로의 전환이 조속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 구성원 모두 다 함께 힘을 모아야겠습니다.
교육과 연구에서의 혁신과 장기 계획의 실현은 행정과 재정의 안정적 운영과 지원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구성원 여러분의 많은 지지와 협조 부탁드립니다.
국민 여러분, 그리고 서울대학교 학생, 교직원, 동문 여러분!
서울대학교는 2026년 개교 80주년을 맞습니다. 그동안 이룬 성과를 평가하고 앞으로의 과제를 설정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입니다. 20여 년 후 개교 100주년을 맞는 미래 서울대학교의 모습을 지금부터 구상하고 만들어가야 합니다. 서울대학교는 분명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고 계획하고 주도하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교육과 연구에서의 혁신을 바탕으로 대학 교육의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의 성장 경험과 혁신 노력을 배우기 위해 다른 국가 대학들이 교류와 협력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폐허와 고난 위에 겨우 서 있던 서울대가 세계 명문대들과 경쟁할 수 있게 된 것은 국민의 기대와 사랑 덕분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대가 국민의 기대와 사랑에 제대로 보답했는가에 대해서는 우리 스스로 더욱 철저히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학 혁신의 최종 목표는 그 결실을 국민과 함께 나누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목표 달성은 대학 캠퍼스를 넘어 기업과 정부, 그리고 국민과 함께 할 때만 가능합니다.
고정관념의 울타리, 전공의 울타리, 대학의 울타리, 국경의 울타리 안에 머물러 있는 대학은 지속가능할 수 없습니다. 대전환의 시대를 이끌어가는 학문공동체, 대학 혁신의 성취가 구성원의 자부심으로 이어질 수 있는 ‘큰’ 서울대학교를 만들어 갑시다. 이를 통해 구성원뿐 아니라 국민이 신뢰하고 사랑하는 서울대학교를 만들어 갑시다.
서울대는 언제나 국가와 사회, 인류에 대한 책무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23. 10. 13.
서울대학교 총장 유홍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