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감당할 수 없는 폭우로 학교 전체가 순식간에 하천으로 변해 버린 날, 중앙도서관 역시 밀려든 빗물에 귀중한 수천 권의 장서들이 젖고 훼손되는 참담함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복구가 시작되어 안타까운 도서관의 소식이 알려지자 260명의 학생이 도서관으로 자발적으로 모여들었고, 젖은 책 한 장 한 장을 손으로 펴고 말려 서고로 되돌려 보냈습니다. 정말 뭉클한 감동의 모습입니다. 위기와 어려움 속에서도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그리고 함께 이겨내는 실천을 보여주는 바로 이 사람들이 여기 이 자리에 있는 우리 서울대학교 학생들입니다.
자랑스럽고 감동스러운 우리 서울대학교 학사, 석사, 박사 졸업생 여러분, 여러분의 빛나는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출발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물론, 지금 여러분들의 성취와 영광은 많은 사람의 관심과 사랑의 결실인 것, 잘 아실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학생들이 훌륭한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도와주신 가족 분들께 먼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으로 당당히 정문을 나설 수 있도록 강의실과 연구실, 행정실에서 노고를 아끼지 않으셨던 교직원분, 바쁘신 중에도 자리해주신 내외 귀빈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 마음을 하나로 모아 이 우수한 학생들의 빛나는 성취에 큰 축하와 격려의 박수 부탁드립니다.
제가 앞서 새로운 시대의 새 출발을 말씀드린 것은 그만큼 우리가 직면한 작금의 현실이 ‘시대적 대전환기’라는 의미입니다. 전대미문의 글로벌 팬데믹에 전 세계는 혼돈 속에 움츠러들었고, 험난한 고비를 넘기며 새로운 질서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또한 점차 진화하는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 새로운 디지털 시대의 전환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세계적 패권 구도가 요동치고 있으며, 예기치 않은 전쟁과 재난은 우리가 알던 국제적 관계를 모두 바꾸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극한의 한파와 폭우가 반복되는 세계적 기후변화를 온몸으로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는 우리 사회에 수많은 혼란과 두려움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시대를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전환기의 진정한 주인공’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이끌 새로운 세대입니다. 타인이 정해 놓은 잣대와 의미 없는 세대 담론 자체를 거부하고 자신의 가치와 존재에 대한 자각을 더 중시하는 세대, 불의와 공정의 윤리적 가치에 목소리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세대, 디지털 전환기에 최적화된 세대가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지난 3년의 팬데믹 시간은 우리에게 엄청난 충격과 아픔을 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성찰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평범한 삶과 일상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도록 하였고, 자신의 인생과 미래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도록 하였습니다. 성찰은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재발견하도록 해주며, 인생의 도약을 만들어줍니다. 새로운 출발에 앞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그러한 성찰을 통해 ‘자기 삶의 개척자’가 되십시오.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리더는 주어진 삶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고 만들어 갈 수 있는 주도적인 인재입니다.
세상은 점차 더 거대하고 복잡한 시스템으로 돌아가며 그 속도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이 빠르기만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옳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난관에 부딪히고, 수많은 문제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라는 자유로운 학문공동체에서 그동안 배우고 실천하셨던 대로 누구보다 자유롭게 사고하고 탐색하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인공지능 시대에도 쉽게 이루기 힘든 혁신은 바로 창의성의 발현입니다. 인간만이 지닌 고유의 능력, 즉 생각하고 상상하고 탐구하며 구현해내는 그 과정을 온전히 즐기시길 바랍니다.
오늘 이 졸업식에 아주 귀한 분을 모셨습니다. 작년 6월,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감격스러운 이륙을 기억하시는지요? 모든 국민이 한마음으로 발사 성공을 기원했고 목표 궤도에 도달한 순간 모두 환호하며 감동의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바로 이 누리호 발사를 진두지휘하고 우리나라 우주개발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고정환 본부장님이십니다. 누리호의 성공은 결코 행운이 아니었을 겁니다. 오랜 시간 수많은 노력의 결실이었고, 포기하지 않는 도전 정신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가진 자만이 위대한 도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졸업생 여러분, ‘용기 있는 도전자’가 되십시오. 자신의 개성을 과감하게 표현하고, 동시에 사회적 가치를 거침없이 앞세우는 우리 졸업생들의 용기 있는 도전을 열렬히 응원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얼마 전 공개된 챗봇 인공지능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문득 우리 서울대생들이 졸업 후에 무엇을 하면 좋을지에 대한 답이 궁금해졌습니다. 서울대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로 좋은 직장을 구하라거나 개인의 호기심과 열정을 쏟아 부을 분야를 찾아가라는 것과 같은 답을 주더군요. 대부분 누구나 예상할만한 상투적인 대답들이었지만 그 중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서울대에서 갈고닦은 지식과 여러분의 시간을 남을 돕는 데 사용하라’ 입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이 혼자만의 외로운 레이스가 아닌, 여럿이 함께해야 하는 공동 달리기라는 것을 생각할 때, 인공지능이 던진 이 조언을 결코 가벼이 여기지 말았으면 합니다. 혹시라도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이제 이 레이스에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을 잡을 수 있는 여유를 갖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가진 훌륭한 지식과 능력을 주변과 나눔으로써 이 사회가 진정 필요로 하는 리더, 존경받는 지성인이 서울대인이었다는 자부심을 만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서울대학교 졸업생 여러분, 코로나로 인해 겪을 수밖에 없었던 멈춤의 시간은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라 조금은 길었던 ‘면역의 시간’입니다. 어렵고 힘들었던 시기를 씩씩하게 이겨낸 여러분의 경험과 기억은 가장 강력한 ‘삶의 백신’이 되어, 여러분을 더욱 강한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시킬 것이라 믿습니다. 이제 행여 겪었을지 모르는 고단함과 안타까움의 기억은 모두 관악산 기슭에 훌훌 털어버리고, 즐거웠던 추억과 뜨거운 열정만을 가슴에 품고, 힘차게 교문을 나서길 바랍니다. 나아가는 그 길이 외롭거나 힘들 때면 잠시 멈춰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여러분의 모교 서울대는 늘 같은 자리에서 변함없이 여러분을 응원하고 지지할 것입니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눈부시게 빛날 여러분, 다시 한 번 졸업을 축하하며 앞날의 무궁한 영광과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23년 2월 24일
서울대학교 총장 유 홍 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