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임사」
등록일: 2023. 1. 31. 조회수: 1432
2023. 1. 31.(화) 14:00
문화관 중강당
먼저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평의원회 의장님, 학사위원회 구성원을 비롯한 여러 교수님과 직원 선생님들, 총동창회장님, 교협회장님, 그리고 학생 대표 등 서울대 가족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관례상 서울대 총장 이임식에는 전임총장님들을 비롯한 내외귀빈들을 모셔왔으나, 이번에는 조촐한 내부 행사로 치르기로 하였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서울대학교 제27대 총장 취임식을 가진 지 벌써 4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취임사에서 서울대학교 가족과 정부가 제게 부여하신 서울대학교를 4년간 올바로 이끌라는 책무를 무겁게 받아들이며, 그동안 국가의 대표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조국의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끌었던 자랑스러운 서울대의 전통을 이어받아 새로운 미래로 발전하는 초석을 쌓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임기를 마치고 떠나면서, 과연 얼마나 그 약속을 지켰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하지만 모든 세상일이 그러하듯이, 계획은 예상하지 못한 일로 흔들리고는 합니다. 제가 취임 시 예상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일은 코로나19 사태일 것입니다. 코로나 대유행은 지난 3년간 전 세계를 혼돈으로 밀어 넣었고, 대학도 모든 수업이 비대면으로 전환되는 등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대학은 학내 구성원들의 혼신의 노력으로 도서관과 학생생활관을 운영하였고, 대부분의 행정 기능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2시간 안에 결과를 받아볼 수 있는 교내 원스톱 PCR 검사시설을 도입하여 집단 감염의 가능성을 줄였고, 불확실성과 우려도 있었으나 2021년 2학기부터는 수업을 대면으로 전환하여 이제는 대부분 정상화를 이루었습니다. 사실 취임 당시 장기간의 총장 공백 사태로 학내외가 혼란스러워 서울대 위기론이 팽배하였던 것을 생각하면, 지난 4년 동안 서울대의 위기를 극복하고 정상궤도로 올리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썼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라고도 합니다. 서울대는 위기 속에서도 발전을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였고,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성과가 있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취임 초부터 꾸준히 추진해온 학생들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학사제도 개편에 상당한 성과가 있어서 뿌듯함을 느낍니다. 학부생들의 복수전공 부전공 제도가 확대되어 융합교육이 활성화되었고, 대학원생의 지도교수 선택 범위도 넓어졌습니다. 학생들의 다양한 전공 진로지도를 위해 전공설계센터가 설립되었고, 이노에듀(Inno-Edu) 2031을 통해 대학과 학과(부)의 교육과정을 개선하려는 노력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팬데믹 시기에 개발된 온라인 교육 시스템을 활용하여 대면과 비대면 혼합 방식의 대규모 강의를 도입하였으며, 국제여름학기에는 온라인 강의 개설을 통해 외국의 석학 교수를 모실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새로운 시도와 지능형 교과목·교수자 검색 서비스인 스누지니(SNU genie) 도입 등 수강신청 제도의 개선으로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이 넓어졌습니다. 또한 작년에는 문화예술원이 설립되어서 학생들에게 좀 더 다양한 경험과 창작 활동의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연구는 교육과 더불어 대학의 핵심 기능입니다. 독창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SNU 10-10 프로젝트를 시작하였고, 신임교수들이 연구에 빨리 몰입할 수 있도록 초기 정착연구비를 대폭 상향하였습니다. 연구 장비 인프라 사업을 확충하여 초고가 연구 장비 도입이 가능해졌고, 이 장비들을 수도권의 연구 기관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국가경쟁력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4단계 BK21사업에서 사상 최대의 46개 교육연구단(팀)이 선정된 기회를 이용하여, 대학원의 연구·교육 제도 개선을 추진하는 BK21 대학원혁신사업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RA/TA 제도를 개선하여 핵심 연구 인력인 대학원생들의 생활이 안정되도록 노력하였습니다. 이와 더불어 서울대의 연구 성과가 사회에 환류되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선 본부조직으로 창업지원단을 설치하는 등 교내 창업지원 시스템을 재정비하여 학생과 교수들의 창업을 지원하도록 하였고, 캠퍼스와 주변지역에서의 창업 밸리 사업도 꾸준히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일자리 창출을 비롯한 사회적 가치 창출에 서울대의 기여가 커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또한 국가적인 난제에 대해 학제간 연구를 통해 해법을 제시할 수 있도록 국가미래전략원을 설립하여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국가미래전략원은 앞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싱크탱크로서 우리나라 더 나아가 인류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서울대는 지난해에 QS 세계대학 평가에서 29위를 차지하여 최초로 20위권에 진입하는 등 이제는 세계에서 인정받는 대학의 하나로 자리매김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세계를 선도하는 대학이라고 자부하기에는 부족함이 있고, 특히 4차산업혁명시대로 통칭되는 시대의 흐름은 대학에서의 학생 교육과 연구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지난 2년간 100여 명에 가까운 학내외 인사들이 참여하여 서울대의 미래를 그려보는 중장기발전계획을 수립하였고, 이는 이사회의 추인을 받아 공식화되었습니다. 캠퍼스의 난개발을 막기 위한 캠퍼스 마스터플랜도 수립되었고, 관악에서는 정문광장과 행정관 잔디광장의 완공으로 보행자 위주의 캠퍼스 환경 조성이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시흥캠퍼스는 종합교육관과 주거시설의 완공 등 1단계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였고, 이제 서울대병원의 건립과 서울대학교 과학단지 조성을 비롯한 2단계 사업을 시작하면서 서울대의 중요한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대학의 운영 체제도 안정되어 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가장 큰 성과는 법인화 이후 큰 숙제로 남아있던 서울대의 비과세지위 회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를 통해 매년 재산세나 취득세 등 세금 수백억 원을 절약할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캠퍼스 개발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 4년간 정부출연금은 약 1,200억 원 증가하여 2023년에는 5,775억 원에 달하였고, 발전기금 모금액도 4년간 3,800억 원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자체재원을 획기적으로 늘리기 위해 2년 전 설립한 서울대 기술지주회사(SNU Holdings) 체제는 앞으로 수익사업의 활성화를 통해 서울대의 재정 안정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물론 이루지 못해 아쉬운 일도 있습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교원 처우 개선을 비롯한 교직원·학생 복지의 확충입니다.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일부 성과도 있었지만, 능력 부족과 학내외 여건이 쉽지 않아 약속한 만큼 실천하지는 못했습니다. 둘째는 서울대의 독자적인 입시제도의 구현입니다. 서울대 입시는 우리나라 교육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여, 매우 신중하게 그러나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제도를 구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래인재상에 적합한 학생들을 선발하면서, 동시에 고교교육 정상화에 기여하고 여건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기회의 사다리로 작동할 수 있는 서울대 고유의 입시제도를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하였으나, 여러 규제와 사회적, 정치적 압력 때문에 그 희망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셋째는 법인화 때 양여받지 못한 학술림 등 국유재산의 양여 문제입니다. 최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이 반환되는 등 물꼬는 텄지만, 아직도 대부분은 미해결 상태입니다. 마지막으로는 학내에서의 인권 상황 개선이 생각납니다. 인권센터의 제도 개선과 옴부즈퍼슨 제도 도입, 인권 헌장 논의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아직 갈 길이 먼 것이 사실입니다. 그 외에도 미흡한 일이 많겠지만, 저의 능력 부족을 탓하시고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4년간 서울대를 이끌었던 일은 저에게 커다란 영광이었습니다. 부족한 제가 조금이라도 이룬 일이 있다면, 전적으로 저하고 같이 일했던 보직교수님들과 여러 직원 선생님들을 비롯한 서울대 구성원의 덕입니다. 그분들의 탁월한 능력과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아무 일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실 서울대는 그동안 역대 집행부와 구성원들의 노력이 축적되어 지금의 위치까지 발전해 왔습니다. 제가 27대 총장선출과정에 나왔을 때의 슬로건이 “위대한 전통, 새로운 미래”였습니다. 지난 4년간 한 일이 서울대의 위대한 전통에 누가 되지 않고 미래 도약을 위한 기반 조성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며, 유능한 다음 집행부의 활약으로 서울대의 새로운 미래가 펼쳐질 것을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2023년 1월 31일
제27대 서울대학교 총장 오세정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