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주년 개교기념사
등록일: 2022. 10. 14. 조회수: 1526
존경하는 서울대학교 학생 교직원 동문 여러분, 그리고 언제나 서울대학교와 함께 해 주시는 국민 여러분. 서울대학교가 개교 76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매년 돌아오는 날입니다만, 총장으로서 맞는 개교기념일의 감회는 무거운 책임감입니다. 변함없는 애정으로 지켜봐 주시는 국민과 동문들께 큰 고마움을 느낍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꿋꿋이 학업과 연구, 그리고 본연의 책무에 몰두하는 모든 학내 구성원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COVID-19의 위세는 약화되고 있습니다만 팬데믹은 세상에 불연속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가속화된 4차산업혁명과 디지털 전환은 대학에 혁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구 감소와 학령인구 격감은 국내 대학에 다가오는 분명한 도전입니다. 서울대학교는 이러한 요구와 도전에 대한 적극적 대응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우리나라 대표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고민도 깊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산업발전사와 마찬가지로 서울대학교도 선진국 대학들을 벤치마킹하여 달려왔습니다. 그 결과, 서울대학교도 성공적인 추격의 신화를 이뤄냈고 이제 세계대학순위에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방법으로는 더 이상의 도약은 어렵고 자리를 지키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제 서울대학교가 추격의 과정에서 축적한 지식과 경험으로 우리 고유의 학문을 세우고 우리 고유의 대학을 만들기 시작해야 합니다. 학문은 보편적이지만, 학문의 대상과 방법은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학문에서도 고유 모델을 구축하고, 대학도 고유 모델을 세워야 합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변신과 혁신을 위해 서울대학교는 스스로 뼈를 깎고 살을 베어내는 어려움을 기꺼이 감내해야 할 것입니다.
당면한 난제와 닥칠 위기에 대응하는 방법은 중장기적인 영향을 예측하고 내부 역량을 키우는 것입니다. 서울대학교는 아쉽게도 2007년 이후 장기발전계획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일상에 치였고 발등의 불을 끄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동안 서울대가 법인화되는 등 대내외의 환경이 많이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급한 일을 하느라 꼭 해야 할 일을 놓친 셈입니다. 부끄러움을 실토합니다. 이에 서울대학교는 15년 만에 위기와 도전에 대응하기 위한 중장기발전계획을 수립하였습니다. 중장기발전계획은 2040년을 바라보며 교육, 연구, 학생지원·복지, 국제화·사회공헌, 멀티캠퍼스, 재정, 대학운영체제 등 대학 운영의 전 분야를 검토하고 실행과제를 도출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85명에 이르는 위원들이 100회 이상의 모임을 갖고 외부 컨설팅도 병행하는 등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이번 서울대학교 중장기발전계획에는 창의·융합 교육 혁신을 위한 학과 간 장벽 허물기와 융합형 학사과정 도입, 자율성과 공공성을 추구하는 입학 모집단위 광역화와 전공 선택 유연화, 졸업생의 재교육과 경험 전달을 위한 개방형 순환대학 모델 구축, 기숙대학(Residential College) 도입, 인류 난제 해결, 질적 국제화 지향, 지역-산업-대학이 연계하는 R&D와 창업 생태계 구현 등과 같은 실행과제들을 담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중장기발전계획은 미사여구로 포장된 공허한 말잔치가 아니라 반성과 성찰을 기반으로 한 실천강령이자 자기선언입니다. 이제 남은 일은 실천입니다. 앞으로 중장기발전계획을 밖으로 드러내고 실행여부를 검증받겠습니다.
사랑하는 서울대학교 구성원 여러분,
지난 여름, 기록적 폭우로 전국 곳곳에 심각한 수해가 발생하였습니다. 서울대학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많은 건물들이 침수되었고 실험시설과 장서들이 젖고 도로가 유실되는 등 큰 피해가 있었습니다. 전기와 통신 불통으로 교육과 연구 그리고 행정이 마비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밤중 연구실을 지키던 대학원생들은 물을 퍼냈고, 교직원들은 밤샘을 마다하고 복구 작업을 계속하였으며, 방학 중임에도 불구하고 총학생회는 300여명에 달하는 자원봉사단을 구성하였습니다. 물에 젖은 도서관 장서를 한 장 한 장 닦고 말리기 위해 지금도 2백여 명의 학생들이 수작업으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 서울대학교 구성원들의 자율성과 공공성이 다시 한 번 빛났습니다. 저는 이러한 우리 구성원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우리 사회의 방향과 모범을 보여주는 것 역시 서울대학교의 역할과 책임임을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도약은 문화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드라마 영화 클래식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문화예술인들이 넘칩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서울대학교는 문화의 시대를 맞아 문화예술원을 설립하였습니다. 문화와 예술은 대학의 멋이자 권리입니다. 서울대학교 문화예술원은 구성원들의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사회와 소통하며, 나아가 K-Culture 발전에도 이바지할 것입니다. 문화관은 리모델링될 것이며, 옛 파워플랜트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캠퍼스에 난방을 공급하던 시설이 이제 캠퍼스에 문화에너지를 공급합니다. 광장으로 재구성된 정문은 벌써 명소가 되었습니다. 변모하는 캠퍼스에서 우리는 서울대학교의 가능성과 미래를 봅니다. 캠퍼스는 대학을 담는 그릇입니다. 수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도 기능적 복구를 넘어 수해의 근원적인 원인을 치유하는 생태적 복원까지 생각해야 합니다. 문화와 예술이 꽃피고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하고 환경 친화적인 캠퍼스를 만듭시다.
존경하는 서울대학교 학생 교직원 동문 여러분, 그리고 언제나 서울대학교와 함께 해 주시는 국민 여러분. 이제 곧 서울대학교 제28대 총장이 정해집니다. 어린 시절 운동회가 생각납니다. 운동회의 백미는 계주였습니다. 바통 주고받기가 이어달리기의 승패를 가르듯 자랑스러운 서울대의 전통이 면면히 이어지도록 총장으로서의 소임을 다하겠다는 각오와 함께 개교기념사를 마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2022. 10. 14.
서울대학교 총장 오 세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