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회 후기 학위수여식」식사
등록일: 2022. 8. 29. 조회수: 1630
친애하는 졸업생 여러분!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부모님과 가족들께도 축하의 마음을 전합니다. 내외 귀빈 여러분, 바쁘신 중에 우리 졸업생들의 성취를 함께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자리에 와주신 교수님들과 직원 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렇게 훌륭한 졸업생들을 키우시느라 얼마나 애쓰셨습니까. 이제 졸업생 여러분은 세상을 향한 큰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기 바랍니다.
이 자리에는 오늘 행사의 주인공인 올해 졸업생들 말고도 특별한 손님들을 모셨습니다. 첫 번째로 소개할 손님은 수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즈상 올해 수상자인 허준이 교수이십니다. 이미 언론보도를 통해 허 교수님에 대해서 많이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허준이 교수님은 우리 서울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졸업한 동문이시기도 하셔서 잠시 후 허준이 교수님께 자랑스러운 서울대인 상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 후 허준이 교수님의 졸업식 축사가 예정되어 있으니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동문 선배님의 말씀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소개할 손님은 과거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가 미등록, 제명 등으로 졸업하지 못했던 선배님들 다섯 분입니다. 오늘 이분들께 서울대학교 명예졸업증서를 드립니다. 서울대학교는 이미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분들과 4.19 혁명 등 민주화 운동 희생자 분들께 명예졸업장을 드린 바 있습니다. 앞으로도 국가와 사회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찾아내어 서울대학교가 기억하도록 하겠습니다. 세 번째로 소개할 손님은 지난 3년간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졸업식으로 만족해야 했던 졸업생 여러분들입니다. 팬데믹 이후 우리는 네 번의 졸업식을 비대면으로만 개최해야 했습니다. 이제 코로나 이후 첫 번째로 대면 졸업식을 가지게 됨에 따라, 서울대학교는 지난 3년간 비대면 졸업식을 치른 졸업생들에게 초청장을 보냈고, 무려 500여 명의 졸업생들이 이 자리에 오시겠다고 신청해 주셨습니다. 정말로 반갑습니다. 여러분, 이들 졸업생들에게 다시 한 번 뜨거운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사람들은 코로나19의 시대를 고통의 시간으로만 기억합니다. 대학의 수업은 비대면으로 이루어졌고, 친구들과도 자유롭게 만나지 못했으며, 심지어 평생 한 번인 입학식과 졸업식조차 비대면으로 해야만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코로나19의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심지어 목숨을 잃고, 병원이나 요양원에 계신 연로하신 부모님과 손 한 번 맞잡아보지 못한 채 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가슴 아픈 시간이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멈출 수는 없습니다. 조금 관점을 달리 해서 보면, 코로나19의 시대는 인류에게 닥친 어려움을 전 세계적으로 합심하여 이겨낼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해준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이 기간 동안 인류가 만들어낸 과학의 성취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빠른 시일 안에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특성을 알아내고, 가장 효율적인 백신 개발 방법을 찾아내고, 임상시험도 빠르게 진행하여, 국제기구의 승인을 거쳐 실제 접종에 이르기까지 1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과거 주요 백신의 개발에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던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팬데믹의 와중에 불가피하게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방안을 제시하며, 전 지구적 차원의 불평등을 관리해 나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울대학교는 전교의 연구 역량을 총동원하여 인류를 위한 공헌에 나섰습니다. 의학과 생명과학 등 직접적으로 관련된 분야는 물론이고 인문학과 사회과학 등 서울대학교가 보유한 거의 모든 연구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코로나19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그 결과를 전 국민은 물론 전 세계와 공유하는 작업을 벌여왔습니다. 감염병에 맞선 인류의 싸움에서 서울대학교는,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인 졸업생 여러분은, 중요한 한 축을 담당했었던 자랑스런 주역들입니다.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빠져나가는 시점에 세상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딛는 우리 졸업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새로운 세계의 설계자가 되어야 합니다. 코로나19의 생존자가 아니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설계자가 되라는 뜻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볼 때 코로나19 시대에 우리가 겪었던 고통들은 실제로는 새로운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존재해왔던 문제들이고, 인류는 그것을 알면서도 짐짓 외면해 왔습니다. 코로나19는 그 문제들을 더욱 첨예하게 드러내 주었을 뿐입니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인류가 어떻게 지구와 공존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공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방치해왔습니다. 여러 나라의 경험에서 보듯이, 기술은 인간을 위해 사용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감시와 탄압을 위해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경제적 불평등은 순식간에 생명과 안전의 불평등으로 번져나갈 수 있습니다. 선진국 국민들이 4차 접종을 맞는 동안 아프리카의 다수 국가들은 1차 접종률이 10%에도 미치지 못했고, 선진국 국민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동안 개발도상국의 많은 사람들은 열악한 빈민촌에서 밀집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북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세상에 알려지지조차 않고 있습니다. 팬데믹의 경험은 이런 문제들을 모른 척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하게 일깨워줍니다. 인류는 새로운 세계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우리 서울대학교 졸업생들이 세상으로 나아가 담대한 미래를 설계하는 주역이 되어줄 것을 간곡하게 당부합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선진국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최근 들어 자주 듣게 됩니다. 실제로 우리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국제무역개발기구에서 개도국이었다가 사상 처음으로 선진국으로 승격된 나라이기도 합니다. 서울대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때는 세계적인 대학들을 부러워하며 열심히 추격하기만 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올해는 사상 처음으로 QS 세계대학 랭킹 29위로 올라서며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 그룹에 본격적으로 합류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도, 서울대학교에도, 아직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세계사를 만들어나가는 주역이라는 자각과 그에 걸맞은 행동, 그리고 책임입니다. 서울대학교는 세계 선도 대학다운 생각과 행동, 그리고 책임을 다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혁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 졸업생들이 모교를 믿고 그 길을 함께 걸어가 준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조국과 모교를 지금보다 더 자랑스러워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자, 이제 세상으로 나아가십시오. 생존자가 아닌 승리의 주역으로서 세상을 향해 나아가십시오. 인류사적 관점에서 생각하고, 세계사의 주역으로서 행동하십시오. 모교는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장도를 축하합니다.
2022년 8월 29일
서울대학교 총장 오 세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