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주년 개교기념식 기념사
등록일: 2019. 10. 14. 조회수: 8106
2019. 10. 14.(월) 11:00
문화관 중강당
오늘로 서울대학교는 일흔세 번째 돌을 맞습니다.
생일은 스스로를 축하하는 날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이나 조직을 가능케 한 주변을 생각하게 하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정성 속에서 태어나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장하기에 스스로 기쁜 날이며, 받은 사랑을 세상에 되돌려주고 보탬이 되기에 그 탄생을 주변에서 축복받는 날인 것입니다. 물론 마냥 기뻐하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생일은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를 다짐하는 계기이기도 하며 때로는 긴장과 근심 속에서 보다 밝은 앞날을 다짐하고 기원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오늘 개교기념일을 맞아 우리는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그리고 서울대학교를 있게 해준 국민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지 물어봅니다. 과연 우리가 서울대 개교를 가능하게 했던 국민의 선의와 기대에 부응했는지, 행동과 처신에 부끄러움은 없었는지 냉철하게 반성하게 됩니다. 또한 이 어렵고 중요한 시기에 학교를 책임져야 하는 저는 저 자신부터 총장으로서 부족함이 없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성장과 성숙함의 징표는 스스로를 엄격히 진단하고 개선의 길을 찾는 능력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일수록 근본으로 돌아가 존재이유를 확인해야 합니다. 서울대학교가 국민의 자랑이라면 이는 서울대가 만인을 위한 지적(知的) 뛰어남의 토대이며, 이 뛰어남을 함양하여 그 가치와 재능을 국민 모두를 위해 힘쓰는 인재를 길러내는 산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수월성’과 ‘공공성’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궤적은 특별히 현란하거나 화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란한 성과나 화려한 수사(修辭)를 추구할 경우 진정한 가치를 실현하기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5만 구성원과 36만 동문 절대 다수가 화려함이나 현란함을 멀리 하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매우 자랑스럽고 이에 무한한 감사와 찬사를 보냅니다.
지금은 이처럼 내실 있는 변화를 묵묵히 추구해야 할 시기이기도 합니다. 우리 대학에 대한 사회의 다양한 질책, 요구, 그리고 기대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보다 나은 삶의 실현에 앞장서 달라는 국민 전체의 염원에 부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염원을 실현하는 길이 복잡하고 어렵다는 사실을 70여 년 간 수월성과 공공성을 추구해온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될 일도 아니며 단순한 처방으로 해결될 문제들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 대학에서 준비하고 있는 변화, 그리고 내실을 다지는 노력들은 화려하지 않을 수 있지만 매우 신실한 실천이며 전진입니다. 우리 서울대인들은 이 노력들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공감하시리라 믿으며, 이 자리를 빌려 제가 앞으로 중점을 두고 우선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과제에 대해 간략히 몇 말씀드리고 여러분들의 동참을 기대하고자 합니다.
첫째, 법인화된 서울대에 맞는 포괄적인 법제를 정비하고 미래상을 재정립하겠습니다. 2010년 서울대 법인화법이 졸속으로 통과되어, 법제상으로 미비한 점도 많고 서울대 구성원들이 합의하는 미래상이 담기지 못했습니다. ‘서울대학교 법인 재정립위원회’는 이미 활동을 시작했으며 조만간 다양한 제안과 실행 방안이 제시될 예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학내 구성원들, 졸업생 여러분들의 의견을 최대한 청취하고 모아서 반영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둘째, 수월성과 공공성의 가치를 계속 추구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학제 간 교육 및 융합 연구를 가로 막는 각종 규정의 정비, 연구비 관리제도의 전폭적인 개선, 그리고 엄정한 평가에 근거한 학문단위의 선별적 지원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되는 수업과 연구를 한 단계 질적으로 향상 시키는 노력에도 박차를 가하겠습니다. 활발하게 활동 중인 ‘교육위원회’의 제안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셋째, 국가 미래 발전 전략을 선도할 과제를 설정하여 추진하고자 합니다. 특히 AI(인공지능) 연구 교육 활성화와 산학협동을 위해 배전(倍前)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낙성대 벤처밸리와 해동 AI 연구원을 위한 구상도 차근차근 진행 중이며 데이터 사이언스 대학원도 개교를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들을 아우를 수 있는 산학협력 활성화와 학내 벤처창업 생태계 구축을 위해서도 힘쓰겠습니다. 이를 통해 한국사회의 미래에 꼭 필요한 혁신의 주도적인 역할을 서울대가 앞장서 이끌고 나가겠습니다.
보다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기회가 닿는 대로 본부에서 구성원과 동문 여러분께 또다시 말씀 올리겠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41만 서울대인 여러분!
1946년 개교 이래 서울대학교는 많은 고난과 역경을 맞이했지만, 꿋꿋이 버티면서 우리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왔습니다. 유다른 갈등과 혼란 속에서 표류하고 있는 현재 우리 사회를 바라보며, 우리 스스로를 다시금 되돌아보고 수월성과 공공성이라는 불변의 가치를 지켜내고 추구하는 책무를 새로이 다짐하게 되는 개교기념일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1946년 개교 때보다 더 크고 간절한 기대와 희망을 다시금 우리에게 부여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73돌 개교기념일을 맞아 스스로를 다잡고 다 함께 매진합시다.
감사합니다.
2019년 10월 14일
서울대학교 총장 오 세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