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회 전기 학위수여식 식사
등록일: 2018. 2. 27. 조회수: 7398
2018. 2. 26.(월) 14:00
서울대학교 체육관
친애하는 졸업생 여러분,
뜻깊은 성취와 연마의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이제 새로운 삶의 여정 앞에 선 여러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헌신과 사랑으로 돌보고 지원하여 국가의 동량으로 우뚝 서게끔 지켜주신 부모님들께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전합니다. 또한 학문과 인격의 성장을 위하여 훌륭한 가르침을 베풀어 주신 교수님들, 각별한 정성으로 행정 지원을 하여 주신 직원 선생님들, 모교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큰 성원을 보내주신 서정화 총동창회장님을 비롯한 동문 여러분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자랑스런 졸업생 여러분,
대한민국은 7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함으로써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썼습니다. 발전은 단지 경제적인 측면에 머물지 아니하고, 학문, 문화, 사회, 정치 등 전 분야에 두루 미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울대학교의 선도적 역할을 국민 모두는 공감할 것입니다. 서울대인의 한 사람으로서 저는 이러한 사실에 무한한 긍지와 자부심을 느낍니다.
이제 졸업생 여러분은 상아탑의 울타리를 떠나 현실에 몸담음으로써 자랑스러운 계보의 연장선에 서게 됩니다. 어떤 이는 학문의 지속적인 발전에 매진할 것이고, 어떤 이는 삶의 현장에서 선배들의 발자취를 이어나갈 것입니다. 어떤 삶의 길 위에 있든 서울대인이라는 자랑스러운 이름은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찬사와 덕담, 그리고 격려만으로 여러분을 떠나보내고 싶지만 오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의 엄중함은 이러한 유혹을 거부하게 합니다. 서울대인이 중추적 역할을 하며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70여년의 결과를 되돌아보면 영광의 자취 뒤에는 짙은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습니다. 선진국이 이룩하여 놓은 학문의 도입(past follower)에 의존하지 아니하고, 한국적 문제와 해법을 통하여 세계를 진단하고 선도하는 독자적 학문세계를 확립하여 달라는 요구에 아직까지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제는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입구까지 도달하였으나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 또는 퇴락의 위기에 봉착하여 있습니다. 경제 발전이 주춤거리는 사이 양극화는 심화되고 각자도생과 적자생존의 비정한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졸업생 여러분,
서울대인으로 졸업하면서 여러분은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리더로서의 기대감 속에 사회에 편입됩니다. 이런 기대감은 출발점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지렛대일 수 있습니다. 반면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경우 큰 실망감으로 되돌아 올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리더라는 위치는 막중한 책임과 부담감을 수반합니다.
“배운 자는 꽃과 벼처럼 사회에 자양분이 되며, 배우지 못한 자는 잡초와 같다.”(學者如花如稻不學者如蒿如草, 「명심보감 권학편」) 는 말이 있습니다. 서울대인은 우리사회에서 배운 자의 표상으로 꽃과 벼의 역할을 감당하여 왔습니다. 현대사를 이끌어 온 서울대학교의 족적을 이어갈 여러분은 지금까지 이룬 것에 만족하지 말 것을, 서울대인의 이름을 입신양명의 훈장으로 남기지 말 것을, 전환점에 선 국가의 요구를 담대히 감당하여 낼 것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선배들은 지적 수월성을 갖추어 국가와 사회의 리더가 될 수 있었습니다. 탁월한 학문적 성취로 학계의 위상을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지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선지자적 안목과 명민한 판단으로 국가 시스템과 제도를 구축·개선하고 경제도약을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들이 모여 오늘의 서울대학교를 있게 한 만큼, 수월성은 서울대의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을 이룹니다. 여러분은 지난한 학위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침으로써 수월성의 잠재력을 입증하였습니다. 이제부터 절차탁마의 자세로 저마다의 잠재력을 꽃피워 사회발전에 기여하고 모교의 위상을 드높이리라 굳게 믿고 응원합니다.
오늘의 리더는 수월성에 더하여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는 덕성을 겸비하여야 합니다.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사이의 대립, 힘 있는 자와 힘 없는 자의 반목, 갑과 을의 갈등이 만연하면서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갈등지수가 가장 높은 국가가 되었습니다. 앞선 자의 공로를 인정하고, 뒤따르는 이를 위하여 양보하며 배려하는 것이 더 이상 미덕이 아닌 패배자의 핑계로 치부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점점 팍팍해지고, 사회의 성장 동력은 잠식당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리더로서의 서울대인의 위상을 감당하고 유지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지고 더 큰 부담감으로 우리의 어깨를 누르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응하고자 탁월한 지성에 따뜻한 마음을 겸비한 ‘선(善)한 인재’를 서울대학교의 인재상으로 제시하였습니다. 자아의 크기와 깊이는 나의 관심과 배려가 어디까지 미치는가에 의하여 결정됩니다. 공동체적 가치와 개인적 이해가 부딪칠 때, 공동체의 깃발을 들 수 있는 큰 인물로 성장하여 나가기 바랍니다.
철학자 제임스는“행복은 그것을 직접적 목적으로 삼지 아니하고, 다른 목표에 집중할 때에 얻어진다.”고 말합니다. 쾌락과 물질이 보편적 종교가 되어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는 시대에 맞서 탐욕으로부터 고개를 들어 이웃을 바라보기 바랍니다. 내가 갈구하는 것보다 내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성찰하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진정한 행복은 여러분을 반길 것이며, 시대가 원하는 지성과 덕성을 겸비한 리더로 성장할 것입니다.
장도를 떠나는 졸업생 여러분,
이곳 관악에서의 시간은 떼어낼 수 없는 여러분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을 것이고, 강의실과 교정 곳곳에 남은 여러분의 흔적은 후배들에게로 이어질 것입니다. 젊은 날의 정신적 고향 서울대학교를 관심과 애정으로 지켜보아 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교정에서 움튼 추억과 기억이 앞으로 펼쳐지는 여러분의 삶에 활력제로 때로 위로제로 살아 숨쉬기를 기원합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의 졸업과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며, 힘차고 밝은 미래를 위하여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감사합니다.
2018년 2월 26일
서울대학교 총장 성 낙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