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회 후기 학위수여식 식사
등록일: 2017. 8. 29. 조회수: 11631
2017. 8. 29.(화) 10:30
서울대학교 체육관
졸업생 여러분,
여러분의 값지고 빛나는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아울러 교학상장의 기쁨을 함께 누리셨을 교수님들, 항상 도움이 되고자 행정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을 직원 선생님들, 물심양면으로 후원해주신 서정화 동창회장님을 비롯한 동문님들, 서울대학교를 사랑하는 후원자님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특히 누구보다도 사랑으로 힘이 되어주신 부모님과 가족 분들께 더없는 감사와 축하를 표합니다.
아름드리나무가 될 졸업생 여러분,
서울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여러분은 우리 사회가 서울대학교에 보내준 선물이었습니다. 이처럼 소중한 여러분이 각고면려(刻苦勉勵)의 노력 끝에 소정의 과정을 이수하고 영예로운 졸업을 맞이하였습니다. 여러분의 노고와 성취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냅니다. 여러분 수고 많았습니다. 이제 서울대학교는 뿌듯한 마음으로 여러분을 우리 사회에 더 큰 선물로 되돌려드리고자 합니다.
졸업은 새로운 출발을 위한 끝맺음입니다. 부디 새로운 발길을 내딛는 그곳에서 환영받는 선물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애써 남을 도와주며 살자는 제안이 아닙니다. 나의 삶에 충실했을 뿐인데, 그러한 내 삶이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 응원이 되는 삶, 마치 나무가 묵묵히 자랐을 뿐인데, 어느덧 튼실한 재목이 되어 주위에 많은 도움이 되듯이, 여러분 모두가 그러한 아름드리나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졸업생 여러분,
여러분은 ‘이미’지성과 함께 따뜻한 가슴을 지닌 역량 있는 인재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절, 비교적 짧은 기간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룩해내는 저력을 발휘하였습니다. 이는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자랑스러운 성취입니다. 이제 그 저력을 바탕으로 우리는 21세기 세계 문명을 선도하며,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실현해 나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선(善)한 의지와 튼실한 역량을 지닌 인재, 곧 ‘선(善)한 인재’가 필요합니다.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이 바로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지성과 함께 공공성으로 무장된 따뜻한 가슴을 지닌 선(善)한 인재입니다.
졸업생 여러분,
여러분은 또한 평화와 인문이 삶의 기본이 되는 삶의 구현으로 ‘선(善)한 사람들의 공동체’를 만들어갈 주역입니다.
평화 통일과 동아시아의 항구적 평화 실현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중요한 과업입니다. 이는 결코 ‘나’의 삶과 멀리 떨어져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인권과 자유가 보장되는 평화로운 세상의 실현은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가장 중요한 전제입니다. 이를 제도화하기 위해 서울대학교는 통일평화인권대학원과 인권연구소를 설립하여 새 시대가 요구하는 통일·평화·인권문제를 선도적으로 연구하고 교육해 나가고자 합니다.
이제 우리는 인간다운 삶의 영위가 그 무엇에도 앞서는 제일의 가치로서 당연시되는 선진적 ‘인문사회’를 구현하여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상존하는 온갖 차별과 증오, 사회적 갈등과 분열 등을 이성적으로 해소해가야 합니다. 또한 우리 사회의 성장과 성숙에 걸림돌이 되어 온 부조리와 불의, 폭력으로부터 ‘나’의 삶을, 또 ‘우리’의 삶을 한층 안정적으로 보전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일상적 삶에서 늘 평화를 희구하고 실현해 나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평화와 인문이 기본이 되는 삶을 활짝 열어 간다면 우리들이 지향하는‘선(善)한 사람들의 공동체’에 보다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그 길의 선두에 여러분이 서있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졸업생 여러분,
우리는 벌써‘빛의 속도로 연결되어 있고 고도로 지능화되어 있는’ 디지털 혁신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일상생활과 사회활동이 사물 인터넷, 모바일, 인공지능 등 새로운 디지털 기술의 빠른 전파로 이에 의존하는 정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고유한 이성과 감성, 상상, 직관 등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기술적 재현이 시시각각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정신, 심리와 생명 현상도 공학적으로 처리되면서 인간의 기계화와 기계의 인간화가 빠른 속도로 진척되고 있습니다. ‘초(超) 연결(hyper-connection)’, ‘포스트휴먼(posthuman)’으로 대변되는 이른바 ‘4차 산업혁명시대’라는 파도와 본격적으로 마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파도는 우리가 타고 가야 할 물결입니다. 그것은 결코 우리를 막아서는 물결이 아닙니다. 물론 파도가 클수록 변화도 클 것입니다. 그러나 변화는 동시에 기회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창의적이고 자율적이며 협업적이라면, 우리는 너끈히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을 경쾌하게 가로지르면서, 우리 자신을 제고해갈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졸업생 여러분,
우리는 그러한 기회를 통해 얻은 성공적 삶을 강조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성공하는 삶만이 유일하게 좋은 삶은 아닙니다. 사람은 ‘무(無) 오류’의 신이 아닙니다. 이는 살아가면서 항상 성공만 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실패하지 않는 삶’이 한층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며 소중하고 값질 수 있습니다. 특히 오로지 성공만을 위하여 늘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는 강박을 떼어낼 수 있기에 더욱 더 그러합니다.
최선을 추구하는 삶은 때로는 독선적이고 유연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자기 신념과 목표를 앞세우다 보면 본의 아니게 타인을 억압하고 배제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최선보다는 ‘최적(最適)’을 도모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랬을 때 자신이 몸담고 있는 현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관련된 모두가 이롭게 되는 결과를 빚어낼 수 있게 됩니다. 유교 경전인 ����중용(中庸)����에서는 이를 가리켜‘시중(時中)’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때그때 조성되는 현장에 충실하면서 최적의 결과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지향이 바로 시중의 태도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요구되는 창의성을 키우는 데 무척 유용합니다. 미래 사회에서는‘문제해결능력’에 기초한 창의성이 아니라 ‘문제구성능력’에 기초한 창의성이 요구됩니다. 문제구성능력은 주어진 문제를 잘 푸는 능력이나 기존 매뉴얼대로 일을 잘 처리하는 능력 등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그것은 한층 상위의 능력으로, 이를테면 새로운 문제를 개발할 줄 아는 능력, 기존 문제처리 매뉴얼을 갱신해갈 줄 아는 능력 등을 가리킵니다. 또한 문제구성능력은, 아직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언제든 문제될 수 있는 바를 미연에 찾아내고, 그 적절한 해결방안을 마련할 줄 아는 역량이기도 합니다. 송(宋)대의 대문호 소동파(蘇東坡)는 “세상 환난 가운데 가장 처리하기 어려운 것이, 겉으론 무사태평이지만 이면에는 크나큰 우환이 잠재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 변고를 방관하다가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를까 두렵다”(「조조론(晁錯論)」)라고 고백하며, 현상을 통해 내면을 통찰하고, 현재를 통해 미래를 대비할 줄 알아야 한다고 당부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성공에의 강박을 벗고 많은 이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최적’을 도모하는 삶의 태도로‘문제구성능력’을 키워 나간다면 어떠한 큰 변화의 파도가 내 앞에 몰아치더라도 쉽게 휩쓸려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 물결을 타고 희망찬 미래를 향해 더 멀리 나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당당하고 멋진 졸업생 여러분,
끝으로 장차 여러분이 서 있게 될 곳에서, 주어진 삶의 여건과 또 일상이 펼쳐지는 삶터를 늘 치열하게 읽어가기를 당부합니다. 삶은 읽기를 요하는 텍스트의 끊임없는 연쇄입니다. 그 텍스트를 조리 있고 의미 깊게 읽어낸다면, 그만큼 여러분의 삶은 이지적이며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이 “알고 있는 삶보다는 좋아하는 삶이, 좋아하는 삶보다는 즐기는 삶”(����논어����)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삶이란 텍스트를 꾸준히 읽어가는 데 필요한 동력과 역량은 아는 데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데서, 그보다는 즐기는 데서 더욱 더 잘 추동되고 발휘되기 때문입니다.
모쪼록 여러분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삶을 영위하며, 우리 모두에게 선물 같은 삶을 펼쳐내기를 벅찬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이 더없이 자랑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 8월 29일
서울대학교 총장 성 낙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