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주년 개교기념식
등록일: 2016. 10. 14. 조회수: 13630
존경하는 전임 총장님, 총동창회장님, 이사장님과 이사님, 내외 귀빈여러분, 서울대학교 가족과 동문 여러분, 그리고 서울대학교를 성원해주시는 국민 여러분!
오늘 우리는 자랑스러운 개교 70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근대적 대학의 설립을 갈망해 온 반세기에 걸친 민족적 염원이 해방과 함께 드높아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1946년 개교 당시 초대 총장이 미국인이었다는 사실이 동시대의 불편한 상황을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캠퍼스가 상징하듯이 1975년 관악에서 새로운 둥지를 틀 때까지 우리는 그 많은 간난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동안 서울대학교는 대한민국과 대한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하여, 근대적 학문의 척박했던 기반을 묵묵히 쉬지 않고 개척하며, 지성과 학문의 수호자로서의 소임을 다하려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선배 ․ 동문들이 뿌린 희망의 씨앗은 오늘날 웅비하는 서울대학교의 모습으로 그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국내외에서 운집한 우수한 인재들은 캠퍼스 곳곳에서 젊음을 불태우며 학문적 성과를 일구어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졸업생들은 대한민국 공동체를 넘어 지구촌 곳곳에서 세계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그 척박하던 시기에 우리의 선배들이 품었던 미래에의 비전과 이를 실현하기 위해 기울였던 혼신의 노력에 새삼 경탄하게 됩니다. 대한민국은 그간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운 역경을 극복하며, 최단기간에 가장 함축적으로 산업화를 이루고, 다시 한 단계 발전하여 민주화를 이루어 내었습니다.
지난 70년간 서울대학교의 빛나는 발전은 이러한 국가와 사회의 발전과 늘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서울대학교는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시대의 양심을 대변하고, 지성의 빛(Veritas Lux Mea)으로 나아갈 길을 밝혀왔습니다. 해방 직후의 혼란과 전쟁의 폐허 속에서는 물론 한국경제의 개발연대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이 서울대학교를 꿋꿋이 지원해주시고 격려해주셨기에 오늘의 서울대학교가 있게 했다고 믿습니다.
서울대인 모두는 서울대학교와 우리나라의 이러한 성취에 무한한 자긍심을 느낍니다. 우리가 우리의 선배들을 자랑스러워하듯이 개교 100년, 200년을 맞아 우리의 후배들도 우리를 자랑스러워하려면, 오늘 이 순간에도 우리는 서울대학교의 발전을 위한 여정을 멈출 수 없습니다. 지속적인 자기혁신의 노력으로 우리의 꿈과 열정을 끊임없이 실현해나가야 합니다.
서울대학교는 세계가 경탄할만한 진전된 위상을 일궈 왔지만, 우리는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의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룩한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과만으로는 세계적인 선진 대열에 진입하기 위한 장벽을 넘기가 결코 쉽지만은 않습니다. 서울대학교는 해외 명문대학들과 경쟁할 수 있는 교육과 연구의 내실을 갖춰, 대한민국이 선진대국들과 어께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선배들이 이룩해 놓은 성과에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서울대학교가 국립대학법인으로 새롭게 출범하였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개교 70주년을 축하하는 이 자리에 모인 우리는 서울대학교의 지난 시간들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함께 보다 새로운 각오로 우리에게 부여된 시대적 사명을 다시 한 번 되새겨봐야 합니다.
첫째, 서울대학교 본연의 학문연구기관으로서의 모습에 충실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선진국이 이룩해 놓은 학문의 도입(past follower)에 크게 의존했다면, 이제는 글로벌 사회에서 학문의 보편적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한국적 문제와 해법을 통하여 세계를 진단하고 선도하는 독자적인 학문세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학문의 선진화는 창조적 연구로부터 비롯됩니다. 우리는 창조와 혁신을 위한 파괴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 우리는 국립대학 법인체제의 발전기초를 튼튼히 하며 서울대학교에 부여된 시대적 사명을 완수해야 합니다. 서울대학교의 교육 및 연구 역량은 제도적 자율성을 진전시킨 국립대학법인 체제의 성공적인 정착으로 그 토대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국민의 대학인 서울대학교가 국립대학법인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국립대학으로서의 위상과 좌표가 크게 흔들려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궁극적으로 대학의 자율과 자치를 훼손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이제 그간 미흡했던 서울대법의 개정을 통해서 새로운 체제에 상응하는 정체성 확립이 필요합니다. 서울대학교가 추구할 목표가 분명한 만큼, 그것을 향해 미래를 선도할 수 있는 효율적인 지배구조를 정립해야 합니다.
셋째, 밝은 영혼이 깃든 ‘선(善)한 인재’를 양성하며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참된 지식공동체로 거듭나야 합니다. 배타적 개인주의나 집단적 이기주의를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모두가 다함께 발전하는 선한 공동체주의를 배양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지나친 경쟁이 인간의 ‘선의지’(善意志, guter Wille)를 침식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 현상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역동성과 다양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습니다. 우리 헌법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인간상에 기초한 인간의 존엄을 최고의 가치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수많은 개인과 집단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며, 인류에 대한 배려와 이타심을 복원하는 선의지를 통해서 우리 사회의 공동선(共同善)을 확립하여야 합니다.
넷째, 서울대학교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국가와 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학문의 기틀을 마련해야 합니다. 민족의 숙원인 통일 대업의 길에 서울대학교가 통일학(統一學) 연구의 메카가 되어야 합니다. 해방과 더불어 시작된 민족 분단의 아픈 역사가 어느덧 반세기를 훌쩍 넘었습니다. 서울대학교는 통일 한국의 미래와 평화 정착을 위해 통일학과 평화학 연구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연구 성과를 축적해왔고, 이를 통해 하나 된 대한민국을 위한 인적·물적 교류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또한 이제 대학교육도 이러닝(E-Learning) 시대에 무크( MOOC, Massive Open Online Course)를 구현하는 디지털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세계적인 과학기술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정보통신기술(ICT, 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 강국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초학제적이고 탈경계적인 지식창출의 기반을 조성해야 합니다.
다섯째, 서울대학교는 지구촌 사회와 더불어 함께하는 인류애를 보다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서울대학교는 1955년 미국의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통해 의학·행정학·보건학 등에서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었고, 이제 그동안의 발전경험을 개발도상국과 공유하며 세계 고등교육 발전과 전 지구적 글로벌 리더십 형성에 더욱 더 많은 기여를 해야 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아시아·아프리카에서 봉사와 헌신을 아끼지 않는 서울대인에게 큰 격려와 박수를 보냅니다. 이 분들이야말로 서울대인이 지향해야 할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ée)를 몸소 실천하는 분들입니다.
기회는 동시에 도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만이 역사에 자취를 남길 수 있습니다. 서울대학교의 지난 70년이 대한민국을 이끌어 온 성취의 나날들이었다면, 앞으로의 70년은 ‘세계를 품고 미래로 나아가는’(Embrace the world, Pioneer the future) 서울대학교만의 새로운 도전의 역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곧 이제부터 우리에게 새롭게 부여된 소명입니다.
오늘 우리의 다짐은 대학의 사명을 올바로 인식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지난 세월의 성취 위에서, 서울대학교는 이제 한 단계 더 높이 도약해야 합니다. 개인과 사회의 발전은 그 구성원들이 가진 ‘열정과 꿈의 현실화’였음을 우리 대학의 역사는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루어 냈고, 이루어 낼 서울대학교의 자긍심이 세계 속으로 펼쳐나갈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합시다.
저는 학교 운영을 책임지는 총장으로서 전환기의 서울대학교가 이러한 시대적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서울대학교 가족들과 함께 이런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실천해 나가겠습니다. 서울대학교 가족들과 동문 여러분께서도 따듯한 격려와 현명한 비판을 아끼지 마시고, 우리의 사명을 완수하는 이 길에 함께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