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 총장 초청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세미나
등록일: 2015. 4. 30. 조회수: 16159
존경하는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황호택 회장님, 그리고 언론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서울대학교 총장 성낙인입니다.
오늘날 언론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과 파급력은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언론인들이 국가와 사회에 공헌하기 위해 만든 공익적 모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귀한 자리에 초대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대한민국의 발전은 언론인의 헌신, 그리고 희생과 맥을 같이 하여 왔습니다. 우리나라가 국민 주권을 확립하고 세계 중심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언론인들은 치열한 역사의 현장을 발로 뛰며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해왔고, 바람직한 여론 형성을 주도해왔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국가와 사회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묵묵히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을 밝히는 등불로,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선도자로, 언론인에게 맡겨진 사회적 책무를 다해온 여러분들 앞에서 서울대학교와 우리나라 고등교육이 나아갈 방향에 말씀드리며 인사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건국 이후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자유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성공적으로 정착시켰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어느덧 전 세계의 이상적인 제도와 시스템의 전시장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드는 현실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한류가 울려 퍼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자긍심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행복지수 또한 아시아권에서도 최하위를 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라가 어려울수록 우리는 초심으로 돌아가서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를 재음미해야 합니다. 이제 외국 모텔의 무분별한 추종을 벗어나서 한국적 모델을 세계인의 가슴 속에 심어 주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밖으로는 치열한 국가 간 경쟁을 돌파하여 국가적 위상을 향상시켜야할 과업에 직면해 있습니다. 안으로는 구성원 간 사회통합의 동력원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미래의 틀을 만들고 그 틀에서 일할 인재를 배출해야 하는 대학의 역할 또한 새롭게 모색되고 제시되어야 합니다. 지식중심 사회로의 변화, 일상생활방식을 바꾸어 놓은 과학기술의 발전, 저출산, 고령화, 저성장 등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온갖 변화에 적응하고 문제해결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와 대학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학생들은 대학입시준비과정에서 지적 흥미와 호기심이 메마른 상태에서 입학한 후에도 관심은 오로지 취업과 이를 위한 학점 취득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이에 따라 지적 잠재력이 무한한 대학 시절에 가져야 할 지적 모험과 도전 정신은 찾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그간 서울대학교는 학문적 수월성을 통해 지식사회를 선도해왔고, 이를 토대로 국가발전에 기여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여에도 불구하고 서울대학교를 바라보는 외부 시선이 결코 곱지만은 않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생텍쥐베리(‘어린 왕자’)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서울대학교가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상 초유의 국립대학법인 체제로 전환된 지 3년이 지난 지금 서울대학교는 법인체제의 제도적 기반을 다져가고 있습니다. 이제 서울대학교는 헌법이 보장하는 대학자치의 이념에 기초하여 국립대학 법인체제의 발전 기초를 튼튼히 하며 세계로 도약하는 ‘서울대형 발전모델’을 제시하고자 만전을 다하고 있습니다.
국립대학법인 체제는 고등교육의 발전을 위한 새로운 모형입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의 미래상 구축을 위한 우리의 노력은 ‘새로운 대학의 창조(創造)’ 과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개척자적 자세로, 창조적 모델로 서겠다는 확고한 자기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7월, 저는 서울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하면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공동체적 가치의 핵심인 공익, 공공성, 공동선(共同善)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며, 서울대학교가 나아갈 방향의 하나로 ‘선(善)한 인재상’ 정립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찰리 채플린(‘위대한 독재자’)은 탐욕이 인간의 영혼을 중독시키고, 이 세상을 증오의 장벽으로 가로막고, 우리에게 불행과 죽음을 가져다준다고 했습니다. 서울대인부터 밝은 영혼이 깃든 선한 인재로 양성해 나가겠습니다.
이러한 인식 하에 서울대학교는 다음과 같은 대학정책의 기조를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첫째, 선한 인재로서 서울대학교 구성원들이 공동체에 기여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이를 교육과 연구에 적용하도록 이끌고자 합니다. 선의지(善意志, guter Wille)가 충만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과정 운영을 확대하고, 연구활동 또한 사회적 공익 추구와 연계되도록 방향을 설정해 나가고자 합니다. 창의적 능력을 갖추고 이를 활용하여 공동체에 기여하는 인재를 양성하고, 이들이 실천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돕는 것은 국민과 함께하는 서울대학교 본연의 모습이자 서울대학교가 추구하는 시대적 사명입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훌륭한 인재는 지성과 함께 공공성으로 무장된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학생들의 인간존엄성에 기초한 인성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관악기획강좌를 신설하고자 합니다. 예컨대 인간학개론(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 행복학개론(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을 비롯해서 과학, 우주의 진리를 탐구하는 과목을 개설하고자 합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관과 시대를 선도하는 지식으로 무장한 참된 인재, 즉 ‘선한 인재’를 양성하며 공동체의 미래를 이끌어갈 역량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3월 신학기부터 750명에 이르는 차상위 계층 학생들이 학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물적 토대를 제공하고자 ‘선한 인재 장학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우수한 인재들이 물질적 소여의 부담으로 인하여 선한 인재로 성장하는데 어려움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서울대학교는 대한민국의 대학이자 대한국민 모두의 대학입니다. 그렇기에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싱크탱크 역할을 수행하면서, 국민의 사랑을 받는 대학으로 자리매김해야 합니다. 국민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국가와 국민에 봉사하는 대학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서울대학교는 대국민 지식 나눔 사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습니다. On-Line 강좌(K-MOOC)를 대폭강화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가 사회적 이동성(social mobility) 제고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잠재력을 가진 소외계층과 소외지역의 인재를 적극적으로 발굴·육성하는 입시와 교육 제도를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입시의 모든 영역에서 지역균형선발제도를 실시하겠습니다. 입시에서 숨은 보석을 찾기 위한 노력을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또한 민족의 숙원인 통일 대업의 길에 서울대학교가 연구의 중심축이 되고자 합니다. 서울대학교는 한반도의 통일된 미래와 평화 정착을 위해 지난 10여 년 간 통일학과 평화학 연구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연구 성과를 축적해왔고, 미래 통일한국의 나아갈 바를 제시하는 데 있어 선도적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셋째, 서울대학교는 지구촌을 향해 당당히 포효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수준의 명문대학으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우리 사회와 인류의 미래를 위한 창의적 의제를 발굴하고 세계적 수준의 연구 성과를 도출하는 학문 지성의 중심으로써 서울대학교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해 나가겠습니다.
서울대학교는 그동안의 발전을 토대로 국가를 넘어 세계 차원에서도 새로운 책임을 부여받고 있고, 서울대학교 고유의 지식창조 모델을 세계사적 차원에서 확립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학문의 지정학적 세계 질서에 과감하게 도전하며 학문공동체의 새로운 장을 열어나가고자 합니다.
넷째, 국가의 잠재적 과학·기술 경쟁력을 촉발하기 위해 서울대학교는 국가·기업을 통한 추종 연구를 벗어나 국가연구와 민간 연구를 선도하는 자체 미래연구기획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세계는 지금 산학협력을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3월 파리에서 개최된 ‘프랑스 대학과 기업의 만남(RUE)’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산학렵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글로벌 석학 유치, 생명과학, 나노, 정보통신, 그린에너지 분야의 글로벌 선도 연구를 진작해 나가겠습니다.
서울대학교는 국민과 함께하는 국립대학의 일원으로서, 지방 국립대학은 물론 사립대학까지 포함할 뿐만 아니라 정부출연 연구기관 및 민간연구소들과 교육·연구 협력네트워크를 구축하여 글로벌 이슈와 사회통합의 과제 등을 함께 접근하는 데 구심적 역할을 자임함으로써 우리나라 대학의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존경하는 언론인 여러분,
서울대학교는 우리사회의 번영과 행복에 기여하는 지성의 전당이자 지혜의 원천으로서 ‘국민의 신뢰와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대학’으로 계속 전진해야 합니다. 서울대학교의 변화는 서울대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며 대학공동체, 더 나아가 우리 사회와 국가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되어야 합니다.
최근 대학을 둘러싼 불미스런 일들이 언론에 자주 보도되어 총장으로서 송구스러운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서울대학교는 연구·교육 영역에서의 수월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본연의 임무뿐만 아니라, 대학민국의 미래를 국민과 함께 고민하고 공공성을 강화해야 하는 시대적 소명에 충실히 해 나가겠습니다.
저는 오늘 언론인을 모신 이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다짐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서울대학교가 솔선수범하여 사회봉사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겠습니다. 교육·연구의 수월성과 사회봉사라는 공공성의 두 날개로 21세기를 비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사회공헌 전담조직을 확대·재편하여 학생뿐만 아니라 교수와 직원을 아우르는 학교 구성원의 창의적이고 다양한 사회공헌 실천을 지원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대학의 자율정화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치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대학 운영상의 투명성과 책무성이 강화되어야 합니다. 법인화를 통해 자율성이 신장된 만큼 저희들에게 부과된 사회적 책임 또한 가중된다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관행에 안주하거나 책임을 전가하는 구태를 과감히 개혁함으로써 교육과 연구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호하면서 대학의 자정능력을 제고시키겠습니다. 이를 위해 대학조직의 거버넌스와 지휘보고 체계를 재편하고 내부 감시시스템이 잘 작동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서울대학교가 교육·연구 행정의 자율정화모델을 개발하여 전파하는데 선도적 노력을 기울이고자 합니다.
이러한 기조가 순조롭게 유지될 때 서울대학교는 국내 고등교육기관과 아시아 유수대학을 잇는 명실상부 아시아의 허브대학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한 과업에 있어 서울대학교와 대한민국의 바람직한 미래를 결정하는데 여러분들의 협조를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법인화법이 통과된 지 3년 지났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국회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고 법이 통과되었기 때문에 법 개정 등의 후속조치가 필요한 부분이 많습니다. 법인세 면세, 재산의 무상영여, 감가상각비 지원 등과 관련한 제도개선이 따르지 않는다면 성공적인 법인화를 기약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어느 국립대학도 법인화에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이 자리에 참석하신 언론인 여러분의 따가운 질책과 따스한 배려를 부탁드립니다.
미래는 우리 앞에 열려있습니다. 찬란한 미래를 창조하고 개척할 소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서울대학교는 국가적 책무, 시대적 사명을 완수하고 대한민국의 더욱 밝은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 사회의 공동선을 실현할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교육하고 연구하겠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