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주년 개교기념식
등록일: 2011. 10. 14. 조회수: 22240
제65주년 개교기념식
2011년 10월 14일
존경하는 전임 총장님, 총동창회장님, ‘자랑스러운 서울대인’ 수상자님, 내외 귀빈 여러분, 그리고 친애하는 서울대학교 가족 여러분,오늘 우리는 자랑스러운 개교 65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서울대학교가 겪어 온 고난과 극복, 도전과 발전의 과정은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궤를 같이 합니다. 민주화와 경제발전이라는 목표를 향해 힘써 온 우리 국민의 피땀 어린 역사를 하나의 서사시라고 한다면, 우리 서울대학교는 당당한 주역의 하나로 그 중심에 있었다고 감히 자부합니다.
그러나 이 기쁜 날 하루조차도 그런 자부심을 흠뻑 즐길 여유가 없는 것이 우리를 둘러싼 냉혹한 현실입니다. 선진국이 주도하던 세계질서와 가치체계는 그 근본에서부터 흔들리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국가의 역할과 시장경제체제의 가치에 대한 믿음마저 도전받고 있는 양상입니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범람 속에서 지식창출을 독점하던 대학 역시 그 위상이 급속히 변화되어가고 있습니다.
국내의 정치적, 이념적, 경제적 양극화가 개선될 조짐이 뚜렷하지 않은 현실입니다. 국가발전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던 시대에 널리 열려 있던 자기실현의 길이 점점 닫혀 가고 있다는 불만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묵묵히 추구해왔던 근면, 성실, 헌신을 통한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꿈의 실현이 현실의 불확실성 속에서 좌절되고 있는 현상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양극화의 어두운 그림자가 우리 사회의 모습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 혹시라도 분노의 에너지로 분출되지 않을까, 근심을 떨치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국민들은 제도정치권, 국가권력, 그리고 성공한 경제적 강자들이 이러한 현실을 타개할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을 견고하게 품지 못하고 있는 양상입니다. 우리 지식인들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현실을 안타깝게 바라보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비판자로만 머물러서도 안 됩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자유와 정의가 억눌렸던 시대에서도, 우리는 밝은 미래를 향해 고민하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구어 냈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룩한 자부심에 만족해서는 안되고, 근본적인 성찰과 새로운 각오가 절실한 시점입니다. 저를 포함한 교수, 학생, 직원 모두 스스로에게 절박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세계사적 전환기에 과연 우리 서울대학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저는 ‘대학이 희망이다’라는 말씀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미래가 불확실할수록 가치체계가 혼미해질수록 우리는 대학 본연의 소명을 흔들림 없이 지켜나가야 합니다. 지향점이 흔들리는 이 사회에 삶과 학문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피상적인 정보와 주관적인 편견에 좌우되지 않도록 진지한 성찰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야 합니다. 목전의 이익과 정파적 대립에서 벗어나 미래를 내다보고 공동체를 생각하는 지혜를 맑은 샘물처럼 끊임없이 공급해야 합니다.
우리는 개인의 영달을 위한 수단이 아닌, 사회정의와 공정성을 실현하는 지식의 기반을 견고히 해야 합니다. 자칫 소홀히 하기 쉬운 기초학문의 가치를 근본에서부터 다시 인식하고 각 학문분야별로 기반교육을 더욱 견고하게 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좀 더 크게 호흡하고 좀 더 멀리 내다보며 진지하게 배움에 임할 수 있도록 장학제도와 교육여건을 개선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외형적인 ‘스펙’에 매몰된 개인이 아닌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능력과 글로벌 마인드를 함께 갖춘 사회통합형 인재를 길러 내야 합니다.
인재양성과 함께 인간 삶의 가치 증진에 기여하는 창의적 연구는 계속 진전되어야 합니다. 개별 학문의 장벽을 뛰어 넘는 융·복합 연구의 기반을 강화해야 합니다. 산학협동과 지식의 확산에 박차를 가하여 우리의 학문이 사회에 기여하는 부분을 늘려나가야 합니다. 글로벌 선도연구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통하여 사회에, 나아가 인류에 희망과 비전을 제시해야 합니다. 우수한 인재들이 기꺼이 학문후속세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예측가능한 자기실현의 통로를 구축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여건을 확립해야 합니다.
인본적 상상력과 과학적 분석력이 하나로 만나 새로운 가치를 형성하는 세상을 우리는 지금 목도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는 이러한 흐름을 주도하는, 한국뿐만이 아니라 세계 속의 선도 대학으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선진국의 명문 대학을 따라 하기만 하면 되었던 시대는 이제 지나갔습니다. 우리 스스로 “올바른 학문이란 무엇인가”, “어떤 학문이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가”라는 질문을 부단히 제기하며 가치를 창조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이제 비상한 각오와 끊임없는 자기혁신이 필요합니다. 우리 대학의 법인화 역시 새로운 변화를 위한 디딤돌로 이해해야 합니다. 기존의 정부 직할 대학 체제는 교육, 연구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제한 받는 한계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법인화는 우리가 헤쳐 나가야 할 선도적 과업을 힘차게 이루어내는 혁신의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기회는 동시에 도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만이 역사에 자취를 남길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작고한 스티브 잡스가 우리에게 그러한 인간상을 보여 줍니다. 지금 우리는 국가가 서울대학교에 새로이 부여하는 자율과 지원을 겸허히 활용함으로써 학문적 가치창조에 있어 세계 중심권 대학에 진입해야하는 국가적 책무를 완수해야 합니다.
우리 대학의 65세 생일을 축하해야 할 경사스러운 이 자리에서 너무 무거운 말씀만 드린 것 같아 송구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과업에 관한 진지한 성찰을 단 하루도 중단할 수 없습니다. “대학이 희망이다”라는 믿음과 “함께 하는 미래”라는 이상을 잠시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개교 이래 서울대학교가 온 국민의 전폭적인 격려와 지원 덕택에 웅비하는 오늘의 모습을 만들어 냈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에게 한국 고등교육의 밝은 미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갖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서울대학교의 정체성이며 본질입니다.
이제 우리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세계중심권 대학으로 거듭 날 수 있도록 서울대학교의 가족들이 함께 노력할 것을 다짐합시다. 이 사회에 진지한 성찰의 가치를 다시 일깨웁시다. 창조적 지식과 사회연대의 정신이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도록 우리의 열정과 지혜를 모아 나갑시다. 그리하여 맑고 신선한 기풍이 이 사회에 충만하도록 노력합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