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대 오연천 총장 취임식
등록일: 2010. 8. 2. 조회수: 25392
서울대학교 제25대 총장 취임사
존경하는 전임 총장님과 총동창회장님, 여러 대학교의 총장님을 비롯한 학교 안팎의 손님 여러분, 그리고 친애하는 동료 교수, 직원과 학생 여러분! 귀한 시간을 내어 어려운 걸음을 해 주셨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우리 서울대학교가 역사의 시련을 헤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서울대인의 지칠 줄 모르는 노력과 늘 지켜봐 주시는 온국민의 성원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발전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이루어야 한다는 엄중한 책임감에 새삼 어깨가 무겁습니다.
지금 세계는 전례 없는 격변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국제적 역학관계가 요동치고, 세계의 경제 질서가 새 틀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근원적 변화는 산업사회가 지식기반사회로 이행하는 데 따른 결과일 것입니다. 앞으로 창조적이고 가치 있는 지식을 생산하는 나라가 새로운 글로벌 시대를 이끌게 될 것입니다.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의 패러다임이 총체적으로 변화하는 범지구적인 격랑의 한복판에, 대한민국이 서 있습니다. 우리는 짧은 기간에 역동적인 국가발전을 이루어내며 전세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습니다. 하지만 성장의 아픔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념적 혼돈과 계층간 갈등이 커지고 있습니다. 국가적 통합의 구심력은 약해지고, 자기 주장과 이익을 앞세우는 원심력은 커지고 있는 양상입니다.
대한민국의 역량을 다시 안으로 모아, 국가간 무한경쟁을 뚫고 세계의 중심으로 뛰어오를 동력원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입니다. 누가 우리나라를 이 거친 파도를 헤치고 다시 날아오르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감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대학이 희망입니다.
친애하는 서울대 가족 여러분,
대학과 사회는 운명을 함께 합니다. 자명하게도 나라가 있고 대학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의 발전 없이 국가와 사회의 진보가 없고, 국가와 사회의 지원 없이 대학의 발전은 없습니다. 진리와 정의를 존중하며 국민으로부터 사랑받고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대학의 존립 이유입니다. 그동안 서울대가 이러한 대학의 존재 이유를 충족시키는 데 얼마나 충실했는지, 지나온 길을 반추해야 할 때입니다.
서울대학교가 우리나라의 산업화와 민주화에 기여해온 것에 대해 우리 모두는 커다란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러나 반성할 점도 없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함께 나누는 진지한 인간애를 얼마나 발휘했는지, 외국의 연구성과를 수입해 전달하기에 바쁘지는 않았는지, 혹은 학교의 명성에 안주하는 예비 기득권층을 양산한 것은 아닌지, 꼼꼼히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치관의 혼돈으로 우리 사회가 중심을 잃고 갈등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미래 역시 불투명합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시대의 불확실성 때문에 방향을 잡기 어렵습니다. 혼미한 사회의 중심을 잡아주고, 불확실한 미래의 어두움에 빛을 던져줄 수 있는 유일한 등불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대학입니다. 그렇습니다. 대학이 바로 희망입니다.
대한민국이 세계사의 주역으로 비상(飛翔)하느냐 아니면 변방으로 밀려나느냐 하는 이 절체절명의 역사적 갈림길에서, 서울대학교가 세계적 대학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요구는 이제 지엄한 시대적 소명입니다. 새로운 소명은 발전과 진화의 새로운 동력입니다. 이제 우리는 본원적 지식을 창출하고, 인류의 이상 실현에 더 크게 기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수한 신입생을 선발하는 데 연연할 것이 아니라, 탁월한 졸업생을 배출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합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미래를 꿈꾸는 잠재력 있는 인재에게 학습 기회를 열어줌으로써, 국민에게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한껏 자신을 낮추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심성을 갖춘 바른 인재를 길러내야 합니다.
명실상부한 세계적 대학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 모두의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제 더 이상 계량화된 외형과 수치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외부의 잣대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보다 엄격한 내면의 기준에 입각한 학문적 양심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외국대학을 따라가는 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지적 주체성으로 아시아의 가치와 한국의 길이라는 새로운 담론을 세계에 제시해야 합니다.
대학은 학문적 가치를 창조하는 광장입니다. 새로운 미래를 향해 창의적인 도전을 하는 곳입니다. 끊임없는 창조적 진화가 이루어지는 마당입니다. 과도한 시장주의와 편협한 명분론을 아울러 경계하며 대학 본연의 가치에 충실할 때, 우리는 진정한 세계적 대학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학은 사회보다 더 먼 미래를 내다보며 방향을 제시하는 지성의 등대가 되어야 합니다. 기존의 패러다임에 도전하고 한계를 깨는 지식의 프론티어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서울대학교는 ‘민족정신에 뿌리를 두고 첨단의 지식을 향도하는, 학문적 가치창조의 세계적 리더’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서울대 가족 여러분
저는 이 중차대한 변화의 시점에서 학교의 질적 도약에 필요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헌신하겠다는 약속을 이 자리에서 하겠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서울대학교는 제게 참으로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철 모르던 소년이 이 곳에서 지식을 얻고 삶의 방향을 정했습니다. 제 인생과 동의어인 모교를 위해 모든 땀과 눈물을 바치고자 합니다.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한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바로 여러분의 도움과 나눔을 끌어내는 일이 그 중의 하나입니다. 여러분의 도움과 격려 그리고 진성의 비판이 있을 때 서울대학교의 전진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저의 부족한 부분을 동료 교수, 제자 학생, 직원 여러분, 동문 여러분이 메꾸어 주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메꾸어주시렵니까? 힘이 솟습니다. 대학의 생명인 품위와 자율을 지킬 수 있는 든든한 방파제가 되고자 합니다. 활짝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는 ‘경청의 리더십’을 실천하고자 합니다.
향후 몇 년간은 우리 대학이 지식강국 대한민국의 견인차가 되기 위해 토대를 쌓는 중요한 기간이 될 것입니다. 새로운 미래를 향한 창조적 도전의 기반을 튼튼히 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해야 합니다. 국민의 애정과 사회의 지원이 절실합니다. 무엇보다도 신뢰가 필요합니다. 대학 내에서, 그리고 대학과 사회 사이에 탄탄한 신뢰의 강물이 흐르지 않으면 대학의 발전은 요원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제 머지 않은 장래에 세계가 서울대로 옵니다.
따뜻한 인간애와 훌륭한 지적 역량을 지닌 우리 졸업생들이
세계를 무대로 활약할 것입니다.
관악과 연건이 글로벌 지식 네트워크의 중심지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서울대학교의 모습입니다.
서울대학교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힘을 모읍시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맙시다. 민족과 역사를 위해 헌신합시다. 그리고 당당히 이야기합시다. 대한민국의 웅비(雄飛)를 가능하게 할 지성의 힘이 여기 서울대학교에 있다고 말입니다.
대학이 바로 희망이라고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2010년 8월 2일
서울대학교 제25대 총장 오연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