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퍼드대학교 연설문
등록일: 2014. 2. 26. 조회수: 22870
스탠퍼드대학교 연설문
Enlightened Values and Civil Consensus for East Asia
2014년 2월 6일
세계 정상에 우뚝 솟은 학문의 전당에서 오늘 이렇게 강연을 할 수 있게 된 것을 큰 기쁨이자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에게 이러한 소중한 기회를 주신데 대하여 스탠포드대학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동양의 문화전통은 60년을 주기로 하여 세상을 보는 특징이 있습니다. 2014년은 푸른 말의 해입니다. 푸른 말처럼 역동적 기운이 넘치는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한국의 교수들은 2014년 새해의 열망으로 ‘전미개오(轉迷開悟)’라는 사자성어를 선택하였습니다. 과거의 미망과 오류를 바로 잡아 세상을 밝게 이끌자는 뜻입니다. 저는 이 말의 함의를 통해 동아시아의 과거와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모색해보고자 합니다.
한국, 중국,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는 20세기 후반 이후 정치적, 경제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지역입니다. 「극동(Far East)」이라는 지리적 용어가 어색할 정도로 동아시아는 이제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측면에서 중심권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동아시아에 인류의 미래가 있다」는 말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을 만큼 동아시아에서는 성장과 변화의 다이내믹스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동아시아의 부상과 대조적으로 이 지역에 순조롭지 않은 조류가 흐르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석학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 교수는 최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민족주의 감정이 오늘날 동아시아를 휘젓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현상은 “동아시아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진단했습니다. 그의 견해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가 지적하는 「극복해야 할 위기상황」이 존재하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미래는 과거의 토양에서 양분을 얻어 성장하는 나무와 같고, 미래를 이끄는 힘은 역사에서 나옵니다. 역사는 현실을 이해하고 정체성을 확립할 뿐 아니라 미래의 나아갈 길을 밝혀주는 발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과거를 잊고 미래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분명히 파악하고 역사 안에서 성장하는 미래의 에너지를 발견」해야 합니다.
과잉민족주의(nationalistic excesses)의 유산을 극복하고 미래지향적 합의의 길로
저는 동아시아 국가들 간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과잉민족주의(nationalistic excesses), 또는 배타적 민족주의의 유산을 성찰하고, 계몽적 가치의 토대 위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노력이 긴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동아시아 공동체의 안정을 해치는 과잉 민족주의적 조류와 이로 인한 갈등이 가까운 미래에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이웃 나라의 고통스런 경험과 결부된 과거 역사 문제를 진정으로 반성하고 이를 현재와 미래의 시대정신으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이 결여되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과거의 오류를 재현시키려는 행태마저 목격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로, 어떻게 나가야 할까요? 문명사회의 인류의 보편적 가치관, 이를 실현할 주체와 실행방향을 동아시아 역사 안에서 찾고 확산하는 것입니다. 환언하면 아시아 시민사회 저변에 존재하는 미래지향적 에너지를 찾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탐색과정에서 추상적이고 애매하지만 ‘계몽적 合意’ (enlightened consensus) 또는 ‘시민적 합의’(civil consensus)라는 개념을 활용하고자 합니다.
동아시아 근대의 첫 주기 60년 회고
저는 오늘 논의를 위한 역사적 전개를 120년 전 19세기 후반, 2차 대전 이후의 20세기 중반, 그리고 60년이 지난 현 시점의 3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자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 즉 1894년의 상황을 동아시아 근대의 첫 주기로 삼아 논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당시 동아시아는 과학과 기술, 근대적 무기로 무장한 서양의 팽창(expansion)이 던진 충격과 도전 앞에서 진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대외정세가 긴박했고 이 과정에서 일본의 선제적 대응은 아시아 속에서의 유일한 근대국가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명치유신 이후 부국강병의 길을 걸었던 일본은 아시아의 강자로서 대륙진출을 시도했습니다. 청일ㆍ러일 전쟁의 승리, 한반도 병합, 중일전쟁, 2차 대전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동아시아 역사적 흐름의 잔영으로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본은 주변국들뿐만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서구 열강에게도 씻기 어려운 상처와 고통을 남겼음은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19세기 후반 이래 20세기 중반의 60여 년 간 아시아의 패권적 국제질서에서 가장 큰 희생양은 한국과 중국이었습니다. 일본의 한반도 강점이 일본의 패전 에도 불구하고 전후 승전국가간 이데올로기 대결로 인해 한국을 분단 상황으로 치닫게 만들었고, 중국은 내전을 겪고 통일국가로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한반도 분단과 동아시아 근대의 둘째 주기 60년
2차 대전의 종결 이후 두 번째 60년 주기를 맞으면서 상황은 변화했습니다. 역경을 이겨내면서 이룩한 성장, 새로운 차원의 긍지와 자신감의 시대가 전개된 것입니다. 일본은 1955년, 자민당이 지배하는 ‘전후체제’의 출범 후 평화헌법에 기초하고 미 군사력에 의존하면서 세계 경제 강국으로 부상하였습니다. 일본의 경제력은 상당 기간 세계 2위를 지켰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첨단 기술, 부품소재 산업을 발전시켰습니다. 일본의 제도와 문화를 배우자는 열풍이 서구를 휩쓴 때도 있었습니다.
중국은 모택동 혁명을 성공시켜 서구와는 다른 체제, 문화, 세계관을 이끌어옴으로써 더욱 극적이고 인상적이었습니다. 1970년대 말에 역사적 개혁ㆍ 개방의 물꼬를 트면서 30년 간 전대미문의 급속한 경제성장의 길을 밟게 됩니다. 광활한 영토와 13억의 인구를 가진 대국이 수 십 년 간 연평균 10% 정도의 성장을 이룩한 것은 가히 기적 같은 일입니다. 도처에서 금융위기가 도래했음에도 중국은 끄떡하지 않고 역설적으로 시장경제에 숨통을 여는 세계 생산ㆍ소비기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전후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나 산업화와 민주화의 두 수레바퀴가 같이 작동하여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처참한 파괴, 빈곤, 좌절, 혼란을 생각할 때, 한국의 성취는 가히 경이적인 것이었습니다. 세계 11위의 경제력을 갖춘 국가가 되었고 세계 최첨단 지식 정보 기술 강국이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동아시아 지역은 치유와 화해, 공존의 기틀을 견고히 하는 노력이 결여되었고, 때론 서로의 불신과 모순,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이 전개되었습니다.
1894년 이후 세 번째 60년의 주기가 새롭게 시작하는 2014년, 동아시아는 어디에 서 있을까요? 어떤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어떤 책무를 수행해야 할까요? 이런 논의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은 과거의 반성, 단절, 그리고 말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 실천을 통해 신뢰를 구축하는 데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독일의 사례는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과잉민족주의(nationalistic excesses)의 유산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현재 동아시아에서 갈등을 야기하는 요인들 중 하나로서 이미 확립된 보편적 문명가치에 대한 공동체의 확신을 저해하는 흐름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특정 지역에서 과잉민족주의 또는 우월적 패권주의 행태가 노정되고 있음이 그러한 흐름의 예입니다. 이는 시민적 ‘양심’이나 품격이 도덕적 판단의 근거가 되지 못하는 특유의 ‘집단이기심리’에 기인한 것입니다.
2차 대전의 종결로 정리되었던 반문명적 유산을 부활시키려는 일부 정치세력의 집요함은 동아시아의 많은 교양 시민들을 당혹케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과거에 대한 반성은커녕 ‘반성’을 ‘자학’으로 여기고 있는 경향마저 있습니다.
과거 행위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견고하게 이어지지 못할 경우 개인과 사회의 내면적 미덕(virtue)은 무력해질 수 있습니다. 과거 역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은 인류와 세계시민의 계몽적 가치를 견고히 지켜나갈 때 가능해진다는 역사적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계몽적 가치에 호소하는 방식을 힘이 약한 국가가 선택하는 소극적 전략으로 폄하해서는 안 됩니다. 인권, 정의, 평화, 민주주의 등의 계몽적 가치는 전쟁과 억압의 경험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통해 어렵게 획득된 인류 전체의 자산이자 공존의 법칙입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국제적 연대 구축이 긴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계몽적 가치의 보편화 가능성
계몽적 가치는 인류의 경험을 토대로 형성된 신념이며, 공유된 경험에 대한 기억을 토대로 합니다. 공동체는 과거 경험에 대한 ‘기억’의 공유와 반추를 통해 형성됩니다. ‘인류공동체’의 계몽적 가치는 인류가 직ㆍ간접적으로 체험한 경험에 대한 반성을 공유하고 끊임없는 실천을 통해 도덕적 신념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예컨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인권선언 제정을 계기로 진행되어온 인권 확보의 노력은 인류 차원에서의 경험 공유와 실천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계몽적 가치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사랑, 우정, 신의, 사회적 연대 등 감성적 요소가 중요한 몫을 차지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계몽적 가치의 확산이 합리주의 도덕철학이 강조하는 도덕률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른바 “감성의 진보(a progress of sensibilities)”에 의해 가능하다고 지적하면서 ‘감성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시민적 합의(civil consensus)’의 가능성
계몽적 가치의 내용과 범위는 역사 과정을 통해 심화되고 그 범위가 확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 또는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획득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계몽적 가치에 대한 인식의 확산과 그 실천의 제도화는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 평화와 공영을 이루기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이러한 가치 실현 노력의 일환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시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급속한 변동과정에서 동아시아 시민들이 겪은 상처와 고통을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으로 침묵하는 이들의 변화 욕구를 정치에 투입시키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저는 무엇보다 다수시민의 공통분모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들이 동아시아 현실을 어떻게 보는지, 어떤 변화를 요구하는지, 어떤 행동의 잠재력이 성장하고 있는지를 밝히는 분석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과 중국학자들에 의해 2012년 수행된 서울-베이징-동경 시민의식조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조심스럽게 몇 가지 시민의식의 공통분모를 정리해보겠습니다.
첫째, 서울-베이징-동경 시민은 근대화의 결실을 평가하면서도 삶의 위험이 다차원적으로 증폭된 데 대하여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둘째, 이들은 서구로부터 배울 점은 더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제는 단순한 서구의 모방이 아니라 정체성이 살아 있는 발전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셋째, 정부에 대한 신뢰는 전반적으로 저조합니다. 넷째, 도시의 미래에 대하여 정부가 이끄는 기존의 발전보다 시민의 적극적 참여방식을 지지합니다. 다섯째, 이들은 삶의 조건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서 국가안보 못지않게 시민생활의 보장과 행복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음이 뚜렷이 나타납니다. 여섯째, 이들은 가족의 상보상조 기능의 약화와 개인의 이기주의적 추이를 중요한 사회문제로 여기고 있습니다. 일곱째, 이들은 동아시아 시민들 간의 교류에 적극적인 편입니다. 상대국의 역사, 문화, 습관, 취향, 드라마, 노래, 춤 등에 관하여 관심을 갖습니다. 상호 방문, 친구 사귀기, 유학, 결혼 등에도 개방적 태도가 발견됩니다.
위에서 지적한 요약은 조사결과의 일부를 편의적으로 간추린 것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것을 인용하는 이유는 동아시아 시민들이 「삶의 질」의 향상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며 국가 간 대결양상에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편입니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급격히 성장한 중산 시민층이 세 도시 어디서건 매사에 더 참여적이고 여러 차원에서 일관되게 사회정의와 공평성을 요구한다는 사실입니다.
원자력 발전소 건립에 관하여 서울-베이징-동경의 중산 시민층은 어느 집단보다 위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일본의 과거청산 문제에 관해서도 징벌적 정의(retributive justice)의 입장을 택하기보다 일본 시민이 겪었던 원폭의 고통과 상처를 헤아리는 조건 없는 배려(unconditional care)의 입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연구 결과는 암시적이지만 위안도 줍니다. 왜냐하면 편향된 이웃국가 간의 대결 양상은 과거의 고정관념에 익숙한 정치인들이 일부 경도된 집단들과 어울리면서 사태를 악화시키는 것에도 원인의 일부가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1세기 다수 시민들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의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목할 점은 젊고 교양 있는 미래지향의 시민집단들은 불행히도 정치에서 침묵하는 다수로 남아 있다는 점입니다. 이들의 공통요구를 어떻게 시민적 합의로 발전시킬 것인가가 중차대한 과제입니다.
존경하는 동료 여러분,
계몽적 가치를 지향하는 시민적 합의의 가능성과 관련해 가설적인 수준이지만 몇 가지 긍정적 징후들을 제시해 보겠습니다.
동아시아의 중산 시민층은 사적인 영역으로 도피하거나 국가의 권위에 복종하는 피동적인 시민이 아니며 공익과 공덕(public virtue)에 관심을 갖는 시민, 열린 토론으로 공론장을 이끄는 능동적 시민이라는 기대입니다. 이것은 유교가 지식과 교양을 갖춘 집단에게 요구해온 실천 규범이기도 합니다.
흑백논리를 떠나 역동적 균형 또는 중용의 가치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중산층의 성장은 역동적 균형의 사회적 토대로 작동합니다. 중산 시민층은 진보와 보수의 양 날개를 펼칩니다. 동아시아에서는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가 상호적입니다. 개인화가 진전된다고 해서 가족ㆍ사회 공동체가 힘을 잃는 것이 아니라 같이 변하며 어울립니다.
셋째로, 어느 때보다 공생의 가치가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현실의 불평등이 심화될수록 공생과 공존의 가치가 확산됩니다. 그 뿌리에는 공생을 지향하는 동아시아 규범문화가 있습니다. 당연히 정부는 민생문제 해결을 강하게 요구 받습니다. 중산 시민층은 자신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약자와의 공생을 추구하고 그들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리는 노력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동아시아 인본주의 전통이 새로운 발전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인적자원의 개발, 인간의 적성 개발을 위한 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어야 합니다. 특히 한 국가의 국민이면서 교양세계시민으로서의 자질과 역량을 갖춘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노력을 공통으로 전개해 나가야 합니다. 대학은 한 국가의 목표와 문화적 특성을 넘어서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창출에 매진해야 할 책무를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선과 악의 이분법, 양자 대결 대신 유교 문화권에서는 상대를 배려하는 소통문화가 보편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소통은 언제나 의견이 다른 타자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따라서 설득과 합의 등 일련의 과정이 중요해집니다.
존경하는 동료 교수 여러분,
우리의 논의는 이제 유교 자본주의나 아시아적 가치 등을 설명하고 합리화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합니다. 대신 우리는 동아시아를 포함하여 인류가 당면한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급속한 글로벌시장경제의 전개와 기술혁신으로 인해 발생되는 부작용 앞에서 삶의 안전을 어떻게 증진할 수 있는가를 깊게 생각해야 합니다. 새로운 거버넌스 구축에 동아시아 국가들이 어떤 공헌을 할 수 있는가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류번영의 조건을 다시 깊게 헤아리는 계몽적 가치를 탐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워싱턴 합의’로 지구적 위험을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1989년 주창된 워싱턴 합의는 소련과 동구의 몰락 이후 각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의문이 커지고 있습니다. 자유시장을 신봉하는 10개 정책 항목들은 아마도 세계 시장경제에 활력을 넣을 수는 있겠지만 국내/국제적으로 증가하는 불평등, 양극화, 금융불안, 경제위기, 사회갈등과 대립을 막는데 유효할지에 의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혁신, 공평, 자결의 3대 공리로 꾸려진 2004년의 ‘베이징 합의’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분명한 점은 베이징 합의는 중국 발전경험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베이징 합의는 국가 단위의 경제조직과 주권 행사에 관심을 가질 뿐 시민 차원의 정치적 참여와 자기결정의 문제는 포함되어있지 않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토대에 우선순위가 주어지지 않는 세계관이 보편적 타당성을 가질 수 있는가에 깊은 성찰이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오늘 제가 탐색한 계몽적 합의 또는 시민적 역할의 담론은 동아시아의 정체성을 높이고, 세계정치, 경제질서에 기여하는 미래의 동아시아로 전진해야 한다는 믿음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는 「인간의 삶을 중시하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신장, 양극화 해소와 빈곤의 퇴치, 국가 간 갈등과 대결의 해소를 위해 국제사회의 구심적 역할을 수행할 시대적 책임을 안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동료 교수 여러분,
저는 이런 새로운 길을 탐색하는데 대학과 지식인사회의 선도적 역할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대학은 고전의 풍부한 영감과 과학적 진리를 현대에 접목시키는 탁월한 두뇌가 모여 협동하는 곳입니다. 우리가 직면한 글로벌 과업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상상력을 요구합니다. 대학은 어느 때보다 시민에게 가까이 가서 대화를 해야 합니다. 특히, 대학은 침묵하는 다수, 조직되지 않아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어려운 삶의 조건 속에서 변화의 욕구를 지향하는 시민의 진정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고전의 풍부한 영감과 진화하는 과학적 가치, 그리고 시민의 목소리를 결합하여 새로운 발전모델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특히 국가 간 경계와 편견을 허물 수 있는 지식과 지혜를 지속적으로 창출해야 하는 기관입니다. 스탠포드 대학의 명성은 미국의 국가이익에 기여해서라기보다는 인류 문명의 발전과 진화를 위한 선도적 역할을 수행해왔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이러한 대학의 노력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정치인들이 정치적 이익을, 경제인들이 경제적 이익을, 정부 관리들이 개별 정부의 정부적 목표를 추구하는 현실적 제약에 묶여 있지만 지식인과 대학인들은 이들 개별적 이익을 뛰어넘어 동아시아의 공통이익 더 나아가 인류의 보편적 미래가치를 추구하는 자율적 책임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탐색적 수준의 저의 강연을 오랜 시간 경청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