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학년도 입학식사
등록일: 2010. 4. 20. 조회수: 26055
2010학년도 입학식사
2010년 3월 2일(화) 11:00~ 종합체육관
오늘 서울대학교는 3,461명의 새 가족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서울대학교 역사 상 처음으로 일 천 개가 넘는 고등학교의 영재들이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새 가족을 맞는 우리 학교에 봄기운이 더 완연해지고 활기와 희망이 넘칩니다. 이 기쁜 날에 훌륭한 재목을 정성들여 키우신 학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신입생들의 각고 어린 노력을 축복하기 위해 귀한 시간을 내어주신 총동창회장단 여러분과 내외 귀빈 여러분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또한, 축사를 해 주실 본교 사회과학대학의 Anthony Woodiwiss교수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친애하는 신입생 여러분!
여러분의 입학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하합니다. 오늘의 이 영예로운 입학은 그동안 여러분이 기울인 노력의 값진 결실이며 동시에 가족과 모교 선생님 등 많은 분들의 정성과 배려 덕분입니다. 오늘의 감사하는 마음을 소중히 간직하여 이웃과 사회에 보답하는 자세를 늘 지키기 바랍니다.
신입생 여러분이 힘들여 입학한 대학이 무엇인지 각자 생각하는 의미나 느낌은 남다르고 다양하겠지만, 오늘 이 특별한 날에 본인과 대학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하겠습니다. 본인은 1960년대에 대학 생활을 했습니다. 일본의 침탈과 동족상잔으로 폐허가 된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당시 누구나 다 그러했듯이 혼란과 가난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도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의 원조를 받아야 연명할 수 있는, 변방의 매우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대학 시절에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대학 생활은 제 인생에서 가장 즐겁고 보람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특히, 배워야 할 과목과 일정이 정해지던 중․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스스로 선택하여 강의를 듣고 생활하게 된 자유로움은 그 자체가 기쁨이었습니다. 때로는 혼란스러운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상의 날개를 펼치고 판타지에 가까운 사유도 마음껏 할 수 있었던, 제 인생에서 가장 즐겁고 소중한 나날이었습니다.
당시 서울대학교는 단과대학들이 모여 있는 연합체와 같은 형태였습니다. 문리대 등 몇몇 대학은 동숭동에 있었고, 공과대학과 농업생명과학대학 등 다른 대학은 여러 캠퍼스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교육 시설도 열악했지만, 특히 종합대학교가 주는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단과대학에서 제공하는 전공과 기초교양 과목들을 훌륭하신 교수님들로부터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타 단과대학의 다양한 강의를 접할 수는 없었던 점은 무척 아쉬웠습니다. 당시에는 요즈음과 같이 문과와 이과를 넘나드는 융합 전공을 이수하거나 학생 스스로 전공을 만들어 공부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신입생 여러분!
앞에서 이야기 하였듯이, 대학은 자유로이 공부하는 곳입니다. 꿈과 상상력을 마음껏 키우는 곳입니다. 단기적 성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긴 호흡으로 탐구하는 곳입니다. 우리 학교의 초빙 석좌 교수이며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독일의 폴 크루첸 박사는 대학에서의 무한히 자유로운 사고와 호기심, 그것을 바탕으로 한 배움과 학문 활동이 그가 노벨상을 받게 된 가장 중요한 원천이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자유로운 지성의 전당인 이 서울대학교에서 탐구의 특권을 마음껏 누리기 바랍니다.
아울러 여러분의 무한한 호기심과 상상력이 단단한 기초 위에서만 그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하고자 합니다. 많은 졸업생들이 가장 기억에 남고 평생 도움을 준 지식들은 사실 전공과목 못지않게 중요한 1학년, 2학년의 기초 교양과목들로부터 얻은 것이라고 합니다. 요즈음과 같이 학문이 빠르게 변화하고 응용지식이 양산될수록, 기초 지식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기초지식일수록 지식의 반감기는 길다는 점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합니다. 학문의 경계를 넘어 기초지식을 습득할 때에만 진정으로 중대한 발견을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번득이는 재치나 기발함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진지함과 성실함이 바탕이 되어야만 합니다. 학문의 세계를 향하여 묵묵히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바로 학문하는 자세입니다. 공자의 말씀을 기록한 《논어》에 “학문은 비유하건대 산을 쌓는 것과 같다” 는 말이 나옵니다. 성과가 작다 하여 실망하지 말고, 거의 이루어졌다고 자만하지도 말 것이며, 오로지 끝까지 지식을 쌓아 나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학문의 길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대학에서 공부하는 4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습니다. 사람을 가장 많이 변화시키는 기간입니다. 이 기간 동안 여러분이 얼마나 성실히 지식의 산을 쌓느냐에 따라 여러분 자신은 물론 이 세상이 달라지는 정도가 다르게 될 것입니다.
자랑스러운 신입생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서울대인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서울대인으로서, 글로벌 인재로서 응당 갖추어야 할 실력과 덕성을 키워가야 합니다. 최근 우리 학교는 세계 초일류 대학을 향해 도약하고 있습니다. 저명한 해외 석학과 외국인 전임교수를 대거 유치하고 전방위로 국제화된 교육 환경을 구축하였습니다. 여러분은 80여개 나라에서 온 3,000여명의 외국인 학생, 그리고 초빙교수를 포함한 200여명의 외국인 교수님들과 소통하며 글로벌 인재로서의 소양을 익힐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학교는 학문의 경계를 뛰어 넘는 교육과 연구를 위하여 다양한 전공이수제도를 도입하였습니다. 기초교양교육을 강화하고 학문간 개방과 융합을 지향하는 교육과 연구 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혁신적 발전과 어우러져, 교수님들께서는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교육과 연구를 이끌고 있고, 그 제자들은 창의와 자율을 바탕으로 학업에 정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최고라는 수식어가 결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신입생 여러분은 이 학문과 지성의 공동체를 이어갈 꿈나무들입니다. 최고의 대학에 걸 맞는 최고의 서울대학교 학생이 되어 주기를 기대합니다.
여러분은 ‘서울대다움’이 최고의 실력과 창의적 역량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도 늘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지식과 학문의 진정한 가치는 공동체를 위한 나눔에 있습니다. 현재 재학 중인 학생들 중 7천명이 넘는 여러분의 선배들은 다양한 봉사활동을 통해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며 장차 세계를 이끌어 갈 덕성을 키우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자신의 역량을 진정으로 사회와 인류에 베풀 줄 아는 실천적 지혜를 부단히 계발하기 바랍니다. 나의 성공과 성취만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과 공동체 그리고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는 서울대학생이 되어주기를 기대합니다.
사랑하는 신입생 여러분!
퇴계 이황(李滉) 선생께서 지으신 <산을 오르며(登山)>라는 시를 여러분에게 들려주는 것으로 축하와 격려의 말을 마칠까 합니다. “그윽한 곳 찾아 깊은 산골 넘어서, 험한 땅 지나고 겹겹 산 뚫고 가세. 다리가 힘들다고 말하지 말게나, 영원한 마음의 기약이 아니던가. 이 산은 높은 학자와 같아서, 홀로 서서 곧은 뜻을 품고 있다네.” 신입생 여러분, 이제 하나의 작은 봉우리에 올랐으니, 새로운 각오로 더 높은 정상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0년 3월 2일
서울대학교 총장 이장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