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주년 개교기념식 기념사 (2006.10.13)
등록일: 2006. 10. 13. 조회수: 21497
제60주년 개교기념식 기념사
존경하는 전임 총장님, 총동창회장님, 여러 대학 총장님을 비롯한 내외 귀빈 여러분, 그리고 친애하는 교수, 직원, 학생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서울대학교 개교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여기 참석해 주신 여러분 덕분에 이 역사적인 축하의 마당이 더욱 빛나고 있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자랑스러운 서울대인’과 ‘서울대학교 교육상’ 수상자 여러분께 서울대학교 가족 모두의 마음을 모아 축하와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서울대학교는 1개 대학원과 9개 단과대학을 통합하여 국내 최초의 국립종합대학교로 출범하였습니다. 그 후 60년 동안 우리는 가난과 혼란, 그리고 전쟁의 폐허를 딛고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했습니다. 대한민국이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세계적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로 발돋움하기까지, 겨레의 영광스러운 발전의 선두에서 성실하게 소임을 다해 왔습니다. 서울대학교의 60년은 실로 민족의 고통과 영광을 함께 한 역사였습니다. 이러한 성취가 있기까지 사회 각 분야에서 빛나는 기여를 해 주신 동문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우리는 새로운 갑자의 출발점에 서 있습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막중하고도 희망찬 사명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서울대학교는 지난 60년 간의 낡은 틀을 벗어나‘겨레와 함께 세계를 선도하는 대학’으로 거듭나기 위해 오늘 새로운 뜻을 밝히고자 합니다. 서울대학교는 국가 발전의 동량을 육성하는 역할을 넘어, 21세기 새로운 문명을 주도하는 대학으로 도약하고자 합니다. 민족번영은 물론 인류평화에 공헌하는 것을 우리의 최종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오늘의 지식기반사회에서 세계의 대학들은 무한경쟁과 무한교류의 시대를 맞았습니다. 우리는 국내 최고였습니다만, 세계 최고는 아니었습니다. 국가의 기틀을 만드는 것이 절박했던 그 시대에, 대학 역시 제도적 기초를 만들고 내실을 기하는 일이 급선무였습니다. 그런 어려운 과정을 겪으면서 서울대학교의 연구역량은 일부 선도학문 영역에서 세계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영국의 [The Times]가 발간한 보고서에 의하면, 서울대학교의 학문적 역량은 작년 세계 93위에서 올해 63위로 30단계 뛰어 올랐습니다. 결코 충분하다고 할 수 없는 투자로 이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다는 것은, 서울대학교의 업적과 성취가 세계의 명문대학들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한번 입증한 것입니다.
이제 서울대학교는 민족사적 위상을 넘어 세계사적 무대로 전진하도록 요구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대학성원의 바람일 뿐만 아니라, 60년 간난의 세월을 함께 해 온 우리 민족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세계의 대학이 되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이 새로운 꿈을 이루자면 연구, 교육, 행정, 지배구조 및 재정 등의 영역에서 획기적 전환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런 혁신을 일구는 두 개의 중심원리로 ‘융화(融化)와 개방(開放)’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융화’는 이질적 요소들이 상호 접촉하고 결합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하는 상호 조응(相互照應)의 원리이며, ‘개방’은 상응과 교류를 촉진하는 소통(疏通)의 원리입니다.
두루 아시다시피, 현대사회는 다양한 지식과 가치가 충돌하고 상응하는 다면적, 다원적 사회입니다. 대학이 이런 현대사적 변화를 주도하려면 인문과 자연, 기초와 응용, 물질과 정신을 서로 교합시켜 새로운 지식을 용솟음치게 하는 ‘융화의 원리’를 촉진해야 합니다. 대학의 구성원을 다양화하여 상호 공감의 영역을 확대하고 국내외 연구기관과 창조적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나눠야 합니다. 대학은 이제 홀로 지적 여행을 떠났다가 홀로 돌아오는 공항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로비에서 서로 만나 지적 발견과 통찰력을 공유해야 하고, 때로는 서로의 지적 여행에 동반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융화의 원리입니다.
개방은 우리 사회의 각계각층에 더 넓은 기회를 부여하고, 우리의 인재들에게 다원적이고 입체적인 사고와 다문화의 소양을 갖추도록 하는 이 시대의 운영 원리입니다. 세계의 인재들이 우리 대학에서 활동하고, 우리의 인재가 세계의 대학과 연구기관, 세계 기구와 기업과 산업현장을 누비도록 해야 합니다.
융화와 개방을 향한 첫 과제는 국제교류의 획기적인 확대입니다. 우선, 글로벌 지식인과 국제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서울대학교 국제 캠퍼스’를 신설하여 세계 명문대학의 교수, 학생들과의 교류를 촉진하겠습니다. 그것은 미래 비전과 글로벌 정신을 개척하는 역할을 할 것이며 인류사 진보의 토대가 될 것입니다. 세계 대학 및 연구소와의 학술교류 역시 중요합니다.
서울대학교가 현재 맺고 있는 세계적 수준의 학술교류 파트너를 500여개 기관으로 확대하여, 교내에 세계적 명성을 얻은 교수가 백여명에 이르게 하고, 학생들이 ‘세계인’으로서의 소양과 자질을 갖추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또한, 외국의 석학들을 관악캠퍼스에 초청하여 수준 높은 강의를 증설하고, 세계 유수대학과의 공동학위제 및 공동원격강의를 확대하고자 합니다. 이런 기획들이 성공하려면 외국어 강의의 증설이 필수적입니다. 향후 4년 내에 외국 학생들이 수강하는 모든 과목과 중요 과목들을 외국어 강의로 전환해서 명실공히 국제 수준의 대학으로 만들고, 초빙교수 연구동과 외국인 숙소 확충 등 인프라 구축에도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교육제도의 적극적 혁신이 필요합니다. 기초를 더욱 중시하고 학문 분야간의 벽을 낮추어 개방과 융화가 활발히 일어나도록 하겠습니다. 학생의 자율 선택에 의한 자기맞춤식 전공제나 자유전공제의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학생들이 교양시민과 봉사적, 실천적 지식인의 자질을 함양하도록 공공 리더십센터를 설치하여 봉사 활동을 필수학점화하는 방안을 고려하겠습니다. 또한, 프랑스 그랑제꼴대학 등 외국 명문대학들과 함께 시행하고 있는 석박사공동학위제를 국내의 대학에도 개방해서 지방대학과의 함께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또한, 연구제도의 혁신을 이루겠습니다. 국내 각 지역의 산업 발전 및 복지 증진을 위해 멀티캠퍼스와 지역혁신 클러스터 연구단지 건립을 추진하겠습니다. 서울 근교에 ‘차세대 기술융합연구단지’를 설립하여 기술혁명의 비전을 현실화하는 융화의 중심지로 만들겠습니다.
여기에, ‘범학문통합연구소’를 신설하여 인문, 사회, 자연, 공학, 예술이 함께 어우러져 상상력의 기대지평을 확장하는 중심기구로 발전시키겠습니다. 이제 서울대학교는 여러 전공영역으로 세분된 학문을 아우르는 ‘융합의 광장’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내외 귀빈 여러분!
우리 대학이 세계 정상의 대학이 되고 개방과 융화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자율성과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교육, 연구, 행정, 재정 시스템의 모든 면에서 국제적 수준에 오르도록 하고 각 학문 분야에 많은 재량권을 넘기겠습니다. 서울대학교는 이미 여러 가지의 제도혁신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자연과학대학에서는 매우 엄격한 교수 정년과 승진 제도를 자율적으로 제정하여 실행 중에 있고, 공과대학에서는 학장선임제를 임기 4년의 개방형 간선제로 변경하였습니다. 경영대학에서는 글로벌 MBA과정을 신설하고 미국 듀크대학과의 공동학위제를 도입하여 세계적 경영자를 육성하는 제반 준비를 마쳤습니다. 또, 국제적 기준의 연구관리 시스템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런 혁신을 더욱 성공시키려면, 세계 유수의 대학과 비견할 수 있는 재정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현재 서울대학교가 보유하고 있는 세계 30위권의 연구개발능력과 지적 자산을 적극 활용하고 산학연(産學硏)협력체제를 더욱 발전시켜 재정확보에 나서겠습니다. 학내의 발전기금재단은 총동창회 및 사회독지가들과 협력해서 발전사업 프로그램을 가다듬고 안정적 재정 조달을 위한 체계적 모금과 기부운동을 전개할 것입니다.
법인화 문제도 이런 관점에서 신중하게 그 향후 진로를 모색해서, 서울대학교가 20년 내에 세계 10위권 대학으로 발전하는 기반을 마련하겠습니다.
전국에서, 그리고 세계에서 창의적, 도전적 기백이 넘치는 인재들을 선발해서 우리 사회와 세계가 원하는 봉사적, 실천적 지식인으로 키우는 데에 심혈을 기울이고자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국민들이 원하고, 세계가 기대하는 미래 대학의 역할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진정 최선을 다할 것임을 이 자리에서 재차 천명하는 바입니다.
사랑하는 서울대학교 가족 여러분.
서울대학교는 작은 샘에서 시작하여 커다란 강을 이루었습니다. 이제는 바다로 나아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물론, 세계와 인류를 위해 기여하는 세계 일류대학으로 웅비해야 합니다. 지난 60년이 대한민국을 이끌어온 성취의 나날이었다면, 앞으로의 60년은 새로운 문명을 선도하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융화와 개방은 우리의 비전입니다. 도덕과 공익정신을 확산하고 미래사회의 지평을 열어줄 인재들을 양성하는 것, 이것이 성숙한 우리 사회가 60돌을 맞는 서울대학교에 바라는 소망 아니겠습니까?
우리 다 함께 노력합시다. ‘민족의 대학’에서 ‘세계의 대학’으로 거듭나려는 비장한 의지로, 벅찬 꿈을 향해 우리 다 함께 정진합시다.
감사합니다.
2006년 10월 13일
서울대학교 총장 李 長 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