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대 이장무 총장 취임사 (2006.8.1)
등록일: 2006. 8. 1. 조회수: 27593
취 임 사
존경하는 전임 총장님, 총동창회장님, 여러 대학교의 총장님, 국회의원님과 내빈 여러분, 그리고 서울대학교의 동료교수와 직원 및 학생 여러분! 부족한 저의 취임을 축하해 주시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 왕림해주신데 대해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서울대학교가 겨레의 대학으로 뿌리를 내리고 국민의 성원 속에서 자라올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서울대학교를 위한 여러분의 애정 어린 관심과 헌신적인 기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저는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대한민국의 지성과 학문을 대표하는 서울대학교의 총장을 맡는다는 것이 저에게는 크나큰 영광이자 막중한 책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60년 전 최초의 국립종합대학교로 설립된 서울대학교는 전란과 정치적 격동 속에서도 본연의 임무를 지켜 왔으며 1975년 실질적인 종합화 이후로는 연구중심 대학을 목표로 한국의 학문 발전을 주도해 왔습니다. 이제 세계적 명문 대학들과 경쟁하는 초일류 대학으로 탈바꿈하고자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많은 것을 얻었고 또 성취했습니다. 그러나 외국의 명문대학이 걸어 온 수 백 년 역사를 불과 60년 만에 이루는 과정에서 어려움과 고통을 겪기도 했습니다.
광복 이래 극심한 혼란과 혼돈 속에서는 희망을 찾아 헤맸고, 권위주의 시대에는 정치적, 사회적 후진성에 대한 분노와 좌절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그 시대를 살았던 모든 지성인이 공유했던 현실이며 또 극복해온 역사입니다. 이제 민주화, 자유화를 넘어 우리 사회는 또 다른 혼란과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이름으로 기존 질서는 무너지고 있으나 아직 새로운 질서는 자리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권리는 신장되었지만 사회적 의무에 대한 인식은 이에 상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평준화는 진전되고 있지만 수월성은 확보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한 의견은 백출하지만 올바른 항로를 비춰주는 등대의 불빛은 아직 희미합니다. 이러한 시대적 환경 변화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지성과 학문의 전당으로서 겨레의 모든 기대와 성원을 한 몸에 받아온 우리 서울대학교는 책임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서울대학교가 앞만 보고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온 가운데 이룬 것도 많지만 못다 이룬 것도 산적해 있습니다. 지식 함양에 급급한 나머지 실천적 지혜인 프로네시스(phronesis)를 터득하는데 소홀하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였지만 나누고, 베풀고, 희생할 줄 아는 리더 육성에는 미흡하였습니다. 서울대학교는 모래알 같은 학문의 집합체가 아닙니다. 현실에서 유리된 나약한 지성인이나 편견과 아집으로 굳어 버린 편협한 지식인의 양성소가 아닙니다.
서울대학교가 양성하고자 하는 인재는 국가와 민족에 대한 사랑과 의무를 다하는 사람입니다. 더 나아가 인류의 평화와 번영에 공헌하려는 의지를 실천으로 옮기는 사람입니다. 냉철한 이성으로 사회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이면서 주변을 배려하고 사회에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서울대학교는 젊음과 정열이 불타오르는 건강한 캠퍼스 안에서 책 속의 이론을 살아 생동하는 지식으로 변화시키는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미래의 지도자 양성에 이제 서울대학교가 더욱 심혈을 기울일 때가 된 것입니다. 21세기 신문명을 주도할 미래의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실천적 지혜인 프로네시스의 함양과 더불어 지적 수월성의 함양이 아울러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시대는 변하고 사회도 변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지식기반사회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의 괄목할만한 발전과 함께 사회에 존재하는 개인과 집단의 역할이 변하여 왔습니다. 이제 물리학적 기계론의 패러다임도 중요하지만 생물학적 유기체론의 패러다임도 존중되어야 하는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과학의 변화에 따라 학문이 변하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대학의 위상과 역할이 변하는 것은 필연입니다. 과학이 단순계를 넘어선 복잡계를 외면할 수 없듯이 학문은 융합의 세계를 이끌며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야 합니다. 인간과 우주를 천착하는 신학문으로 거듭나야할 시점에 우리는 있습니다. 이제 서울대학교는 미래의 대학과 학문의 변화를 위한 대장정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서울대학교는 첫째, 담장을 허문 열린 공동체를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학문 분야간의 장벽을 허물고, 대학과 사회 사이의 장벽을 허물고, 국가간의 장벽을 허물어 진정한 지적 교류의 장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둘째, 기본을 튼튼히 하고 그 기본을 토대로 급격한 시대 변화에 잘 대처할 수 있는 적응력을 강화하는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적응력은 바로 기본의 강화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셋째, 서울대학교는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창의적 아이디어의 보고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보다 깊이 생각하는 심층적 사고와 다양한 지평에서 넓게 생각하는 다각적 사고 그리고 이질적인 요소들에 통합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교육의 중심에 서야 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서울대학교 동문, 동료 교수, 그리고 직원 여러분!
저는 동문 선배 여러분께서 아끼고 다듬어 키워주신 서울대학교를 더욱 발전시켜 후대에 물려줌으로써 그 업적에 보답하겠습니다. 동료 교수님들께서 오직 연구와 교육에 정진하실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직원들께는 합리적인 근무 환경을 제공하고, 능력과 취향에 맞게 적재적소에 보임할 것이며, 자기 계발을 위한 교육훈련의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교직원 여러분들께서는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여건을 조성하고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은 총장의 몫으로 남겨 주십시오.
친애하는 학생 여러분!
넓은 세상을 둘러보십시오. 세계의 명문 대학에는 장구한 학문적 전통과 풍족한 재정, 그리고 첨단의 설비 속에서 학업에 정진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또한 중국, 인도, 러시아 등에는 수억 명의 학생들로부터 선발되고 또 선발되는 과정을 거친 수재 중의 수재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모두 여러분과 경쟁하고 또 협력할 상대들입니다. 여러분이야 말로 의식과 시각을 바꾸어, 앞장서 나아가야 할 일꾼입니다. 세계사적 변화의 중심에 서서 앞날을 개척해 나가는 인재들이 이곳에서 나와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은 5천년 민족사의 변곡점에 서서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좌우할 시대적 책무를 타고 난 선택된 사람들임을 명심하십시오.
서울대학교의 모든 가족과 국민 여러분!
서울대학교는 겨레의 대학이고 세계의 대학입니다. 서울대학교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온갖 능력과 정성을 다하여 국가와 민족을 위해 공헌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국민들의 따뜻한 사랑과 성원에 힘입은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국민 여러분께 마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더욱더 정진할 수 있도록 채찍을 들어 주실 것을 머리 숙여 바라는 바입니다. 서울대학교의 모든 가족과 국민 여러분의 관심과 지원이 있어야만 서울대학교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겨레의 대학이 될 수 있고 인류문화의 발전에 공헌할 수 있을 것입니다.
끝으로 역대 총장님, 특히 전임 정운찬 총장님의 노고에 깊이 감사하며 귀한 뜻과 경륜을 받들어 총장의 직무를 정직하고 투명하고 성실하게 수행할 것을 다짐합니다. 이를 위해 정부와 사회의 따뜻한 관심과 지원, 그리고 존경하고 사랑하는 교직원과 학생들의 도움이 절대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취임사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2006년 8월 1일
서울대학교 제 24대 총장 李 長 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