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싱가포르 대학 총장 만나 대담 (2008. 5. 15)
등록일: 2008. 5. 19. 조회수: 15261
서서울대 이장무(63) 총장과 싱가포르 국립대 시춘퐁(Shih Choon Fong•63) 총장, 한국과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두 국립대 총장이 만났다. 지난 15일 저녁 서울의 한 호텔에서 이들은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학교육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한 시간여 대담을 나눴다. 두 총장은"미래의 국가경쟁력은 대학에서 나온다"며"인적 자원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과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영국의 '더 타임스'가 발표한 2007년 세계 대학 순위에서 싱가포르대는 33위를 기록했다. 한국 대학 중에서 유일하게 100위 이내에 들었던 서울대는 51위였다.
◆국가 경쟁력과 대학의 관계
이장무 총장=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펴낸 2008년도 '세계 경쟁력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국가 경쟁력 순위에서 전체 55개 국가 중 31위를 기록했다. 지난해(29위)보다 두 단계 떨어졌다. 한국은 '고등교육(대학)' 이수율은 4위를 차지하고도 '대학교육의 경쟁사회 요구 부합도'에서는 53위로 떨어졌다.
반면 싱가포르는 국가 경쟁력에서 미국에 이어 2년 연속 2위를 차지했다. 국가 경쟁력과 대학 교육에는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나?
시춘퐁 총장= 싱가포르는 대학의 교육과 연구역량이 곧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대학 교육과 연구에서 돈은 핵심요소다. 싱가포르는 바이오•의학 분야 등 전략분야에 집중투자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GDP의 3%를 R&D(연구개발)에 투자한다. 앞으로 싱가포르는 3%를 더 올릴 예정이다.
이장무= 한국도 약 5%를 교육 부문에 투자한다. 하지만 이는 교육 연구뿐 아니라 교육산업에 투자한 것을 합친 것이다. 한국은 30~40년 만에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다. 이는 우리 교육이 특정 분야 중심으로 집중 투자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제는 기초 학문, 융합 학문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시춘퐁= 2년 전에 우리 정부도 기초학문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기초학문 분야에 대한 지원이 부족했음을 깨달은 것이다. MIT 같은 선도적인 대학에서는 오히려 기초학문 분야에 대한 지원이 탄탄하다.
이장무= 서울대는 기초 학문 연구가 산업 분야에서 얼마나 중요한 평가를 받는지 최근 직접적으로 경험했다. 화학생물공학부의 현택환 교수는 나노 입자를 균일하게 대량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했는데, 이 기술을 국내 기업에 제공하고 43억원의 기술이전료를 받았다.
◆싱가포르대 국제화 성공의 비밀
이장무= 싱가포르대는 국제화에 가장 성공한 대학 중 하나다. 2007년 영국의 '더 타임스'가 발표한 세계대학 순위에서 싱가포르대는 33위를 기록했다. 해외인재 영입도, 외국인 학생 유입 순위에선 모두 10위에 올랐는데….
시춘퐁= 우리에게 국제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싱가포르는 인구 400만명의 작은 나라다. 국가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해외의 인재를 영입해야 했고, 연구진의 50% 이상이 외국 출신이다. 대학원은 재학생의 60%, 학부는 25%가 외국 학생들이다.
이장무= 시춘퐁 총장 취임 이후 싱가포르대의 국제화가 가속화됐고, 글로벌 경쟁력도 높아졌다고 알고 있다. 그 비결이 뭔가?
시춘퐁= 지식기반 사회에서 유일한 생존전략은 대학교육의 경쟁력 강화라는 사실을 싱가포르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정부에서 대학에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쳤다. 싱가포르대의 경우 전체 예산의 75% 정도를 국가가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장무= 싱가포르 국립대의 경우 2006년 기준으로 발전기금 규모가 1조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서울대는 1400억원 정도다. 정부 지원과 탄탄한 발전기금을 바탕으로 좋은 외국인 교수를 채용하고 우수 외국 학생들을 적극 초청하는 싱가포르대가 부럽다.
시춘퐁= 매우 민감한 문제인데, 상당히 많은 부분을 정부가 지원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 정부는 해외 유수 대학과 교류를 통해 싱가포르대의 연구 능력을 국제 수준으로 높이길 원한다.
◆과학 기술에 대한 집중 투자 필요
이장무= 나는 미래의 국가 경쟁력은 대학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재능 있는 인적 자원은 매우 중요하다. 한국이 선진화되면서 학생들의 공대에 대한 열정이 많이 식고 있다. 대신 그들은 음악이나 법, 경영, 행정과 같은 사회적 명성이 있는 곳으로 몰리고 있다. 걱정스러운 일이다.
시춘퐁= 싱가포르 학생들 또한 과학과 기술에 대한 관심을 잃어가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미국인들이 과학과 기술로 갔지만, 그들 또한 지금은 기술에 흥미를 잃었다. 요즘은 'IC' 학생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IC'가 무슨 뜻인지 아나? 바로 인도(India)와 중국(China)이다(웃음). 인도와 중국 학생들이 과학과 기술을 배우러 미국에 간다. 이제는 고등학교와 중학교에서부터 과학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할 때다.
이장무= 우리도 과학 분야를 강화하기 위해 100여명의 외국인 교수를 영입 중이다. 과학은 인류의 웰빙과 복지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이제는 기초 학문과 응용 학문에 함께 보조를 맞춰가야 한다.
시춘퐁= 맞는 말이다. 싱가포르는 바이오•의학 분야를 국가 정책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공학도와 의사들이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서로 교류한다. 기초과학 분야에서 학제를 초월한 연구가 이뤄지는 것이다. 과학의 윤리적 문제 또한 중요하다. 유전자와 게놈 프로젝트가 좋은 예다.
◆이상적인 기업과 대학의 관계
이장무= 앞으로 대학 입장에선 산학(産學) 협동도 중요한 부분이다. 최근 서울대가 수원에 세운 '차세대 융합기술연구원'에서는 매우 창조적인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교수 125명과 연구원, 관련 기업 연구소 및 연구원들이 입주해 IT(정보기술), BT(생명공학기술), NT(나노기술)의 융합을 통한 차세대 성장동력산업을 연구할 계획이다.
시춘퐁= 나 역시 대학 연구기관과 기업의 협동은 필수불가결하다고 본다. 대학에서 배운 신선한 지식은 기업에 새로운 공기를 불어넣는다. 그들은 서로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기업과 학교, 연구소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적극적인 교류를 해야 한다. 기업이 학생들을 지원하고, 학생들이 공부를 해서 연구소로 진출하고, 연구소의 연구 결과가 기업에 이익이 되는 순환 구조다. 나는 이를 '지식 서클(intelligence circle)'이라 부른다.
이장무= 국제화 문제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대와 서울대, KAUST는 전략적으로 협력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세계 어디에서든 통하는 인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조선일보, 2008. 5. 17 발췌 http://www.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