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의 미래와 대학의 과제 (2004.10.29)
등록일: 2009. 7. 6. 조회수: 17096
한국사회의 미래와 대학의 과제
정 운 찬 (서울대학교 총장)
1. 전환기의 한국사회
지금 우리 사회는 지난 수십 년의 근대화 과정에서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지난날에는 경제성장과 민주화라는 두 지상과제가 서로 갈등을 일으키면서도 결과적으로는 국민적 통합의 강력한 동인으로 작용하였다. 실제로 우리와 비슷하게 열악한 상황에서 근대화를 시작한 나라들 중 한국만큼 비약적인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진전을 동시에 이룩한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만큼 우리가 지난날 빈곤과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친 노력은 장차 더 나은 사회를 일구기 위해 반드시 기억되어야 할 소중한 역사적 경험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갈등의 양상을 지켜보면, 과거의 값진 유산만으로 밝은 미래가 저절로 담보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정치권은 여전히 국민의 절실한 여망을 외면한 채 파당적 이해관계에만 매달리고 있으며, 시민사회 역시 국민적 관심이 쏠리는 사안마다 극단적 분열과 대립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회 구성원들이 이처럼 제각각의 입장과 이해관계만 고수하면서 양보와 타협의 정신을 발휘하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는 기약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과 혼란이 우발적으로 돌출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 갈등과 혼란은 한 시대를 마감하고 다음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역사적 과도기의 진통이라 생각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자명한 목표로 추구해온 근대화의 패러다임을 좀더 성숙한 형태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 사회가 정치적·제도적 민주화는 이루었지만 정작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실천적 능력은 여전히 미성숙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제는 누구나 마시는 공기처럼 누리게 된 자유의 반대급부로, 우리는 상충하는 의견들이 대립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와 같은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은 아직 길러지지 못한 상태인 것이다. 남의 처지와 입장을 배려하고 존중할 줄 아는 관용의 자세가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이라면, 그런 정신이 실종된 상태에서는 아무리 그럴듯한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결코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가치관은 과연 무엇이며 또 어떻게 창출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와 같은 가치관의 바탕 위에서 우리가 만들어내야 할 바람직한 미래 사회의 모습은 과연 어떤 것이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우리 사회는 이런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고민을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될 시점에 도달해 있다.
다른 한편 우리는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삶의 불안이 가중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지난날 우리는 경제성장을 통해 그러한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한국경제가 세계 톱 수준은 아니지만 국민총생산 500조원 이상 (5000억 달러 가까운 정도)의 규모로 성장한 오늘날 과연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자문해볼 때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무한경쟁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생존 그 자체가 위협 받는 상황에 처해 있으며, 빈부의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져서 국민적 통합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도처에서 목격되는 위험성의 갖가지 징후를 볼 때, 이제 경제성장이라는 단선적 처방을 통해서는 해결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음을 절감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은 규모로 커진 한국경제가 과거와 비슷한 수준으로 계속 성장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이제는 지금까지의 성장의 신화에서 깨어나야 한다. 물론 더 잘살기 위해 아직도 성장은 필요하고 국제사회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국가 경쟁력은 지속적으로 확보해야 하며 또 이를 뒷받침할 여러 가지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민 개개인의 능력과 여건에 맞게 안정된 삶을 설계할 수 있도록 사회의 불안 요인들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역량과 지혜를 모으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해졌다. 여기에 우리의 어려움이 있다.
우리는 비록 규모는 세계 1,2등이 아니더라도 국민 대다수의 삶의 질을 알차게 다져서 우리 사회에 건강한 활력을 불어넣는 강건한 경제를 구축하여야 한다. 그리고 과거의 고도성장은 불가능하지만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동시에 외국과 잘 지내고 더 나아가 인류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국가를 지향해야 한다. 그런 강소국가(强小國家)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일류국가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수많은 문제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누적된 복합적인 요인에 기인한다. 따라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정부와 민간 차원의 다각적인 진단과 처방, 지속적인 노력과 인내가 요구된다. 그렇지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는 장차 우리 사회에 닥쳐올 예측불허의 도전들을 능히 감당해낼 수 있는 훌륭한 인적 자원을 길러내는 일이다.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우리 사회와 국가의 미래는 교육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한 걸음 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다시 정체와 퇴보의 늪에 빠져들 것인가 하는 전환기의 기로에서 교육의 문제에 더 큰 관심과 고민을 집중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2. 한국 고등교육의 현황
오늘날 대학의 책무는 과거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대학은 시대의 변화를 올바르게 읽어내고 예측하여 지속적인 사회발전의 동력을 제공하는 한편, 국가의 지적 자산을 산출할 책임을 갖고 있다. 나아가 국가 운영과 경제 안정을 위한 적절한 방안을 계발하고, 사회 전반의 유기적 의사소통과 사회복지를 증진하는 데도 기여해야 한다. 시민사회와 시장에 대한 신뢰가 갈수록 중요하게 부각되는 오늘날, 대학의 공적 역할과 책임은 더더욱 커지고 있다. 사회에 대한 대학의 역할과 책임을 등한히 하는 것이야말로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한 가장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다.
앞에서 우리 사회 도처에서 분출하는 갈등에 관해 언급했지만, 교육의 관점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지금의 사회적 혼란은 결국 지난날의 잘못된 교육이 가하는 보복이라는 것을 뼈아픈 교훈으로 되새겨야 한다. 이런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대학은 우리 사회의 부단한 도전들에 응전하기 위해 언제나 변화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하고 한시라도 자기혁신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대학과 사회는 생산적인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자극과 도움을 주어야 하는 동반자적 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대학은 학생들에게 창조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능력을 함양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교육을 해야 한다. 학생들은 대학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계발하고 창의적 지식을 습득해야 하며, 사물을 올바르게 판단하는 능력과 사회적 책임감, 그리고 성숙한 시민의식을 길러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대학교육은 성공적인 국가의 미래와 직결되어 있다.
이처럼 대학교육의 성패가 국가의 장래를 좌우한다면, 과연 우리의 대학은 고등교육의 막중한 책무에 상응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 그리고 고등교육이 제 구실을 다하기 위한 여건은 제대로 갖추어져 있는가. 한국의 고등교육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내실을 다지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 고등교육이 직면해 있는 현실을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지난날 한국의 대학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감당해온 지대한 역할은 인정할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가 이만큼 발전한 것은 전 국민의 피땀 어린 노력과 참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그러한 성취동기와 성장의 동력은 무엇보다 대학교육에 힘입은 바 크다. 1970년만 해도 8.4%에 불과하던 한국의 고등교육 취학률은 2001년에 83.7%로 열 배나 늘어났다. 이처럼 고등교육의 기회가 유례없이 확대되면서 사회 각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 인력을 적절히 공급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대학은 고도성장의 시대가 요구했던 사회적 역할을 어느 정도 충족시켰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성장위주의 경제정책이 경제의 규모를 불리면서 다른 한편으로 경제의 부실을 초래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대학의 양적 팽창이 가져온 부작용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대학에 몸담고 있는 분들이 모두 우려하고 있듯, 1990년대 이후 한국 대학의 수준은 점차 하락하고 있으며, 그것은 대학생의 전반적인 기초학력 저하라는 현상에서 단적으로 확인될 수 있다. 우리가 교육 선진국으로 알고 있는 일본에서도 최근 ‘동경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라는 개탄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지만, 한국 대학생의 기초학력 저하 역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급증하는 학생들을 수용하기 위해 대학의 숫자를 늘려왔지만 정작 교육의 질 향상에는 실패했으며, 대학 역시 문제의 심각성을 제때에 간파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 전체적으로 볼 때 한국의 대학들은 외형상의 규모를 불려 왔지만, 교육과 연구의 질을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는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한국의 대학들은 그동안 다른 대학을 모방하는 이른바 ‘나도주의’에 빠져서 교육의 질과는 관계없이 양적 팽창에 주력해 왔다. 다시 말해 다른 대학이 하는 대로 따라서 해야 손해를 안 본다는 잘못된 경쟁의식에 사로잡혀 왔던 것이다. 예를 들어 정부의 고급 기술인력 양성정책에 따라 한 대학이 공과대학 학생정원을 늘리면 전국의 모든 대학들이 다같이 공과대학 학생정원을 늘렸다. 지금도 고급 기술인력에 대한 필요는 절실하지만, 그와 같은 양 위주의 교육으로는 ‘고급’ 기술인력을 길러낼 수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최근 우수한 학생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으로 교육여건이 더 열악해진 현실을 감안할 때, 수준 높은 교육이 가능하도록 과감한 혁신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동안 한국의 대학은 경제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인 ‘규모의 경제’가 대학에도 적용된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왔다. ‘대학의 규모를 키우고 학생 수를 늘리면 원가절감이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대학과 학생 수를 늘려온 것이다. 그 결과 지금 한국의 대학은 4년제 대학이 200개, 전문대학이 160개로 팽창하였고, 대학생 수는 전 인구의 4.07%로 세계 최고의 규모에 이르렀다. 대학원생 숫자 역시 인구 1천 명당 6.1명으로 미국의 3.9명, 일본의 1.7명에 비해 기형적으로 많은 상황이다. 대학 평준화가 가장 잘 된 나라로 흔히 독일을 꼽지만,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는 4년제 종합대학이 세 개밖에 없다.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하여 고등교육의 위상에 걸맞게 양질의 교육을 하기 때문에 대학의 수준이 다같이 고르게 높아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대학교육은 양적 팽창만 추구하는 규모의 경제에 의존하다 보니 이제는 ‘너무 커서 좋은 제품이 나오기 힘든 산업’이 되어버렸다.
1997/98년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한국경제는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그 결과 경제의 투명성이 상당히 제고되면서 부실을 걸러내는 기본 장치가 어느 정도 마련되었다. 당시의 구조조정은 공정한 경쟁과 투명한 경영을 통해 기업들의 국제경쟁력을 회복하는 데 기여하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경제와 달리 대학은 교육의 양적 팽창으로 야기될 위기의 징후를 감지하지 못한 채 구조조정의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대학이 구조조정의 시기를 놓치고 자기만족에 안주함으로써 이제 한국의 대학개혁은 비용이 많이 들고 절차가 복잡한 버거운 과제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부실을 안고 있는 기업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듯, 앞으로는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여건과 능력을 갖추지 못한 대학 역시 살아남을 수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대학의 구조조정은 대학의 생존을 위해서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박한 과제로 다가와 있다.
3. 한국 고등교육 개혁의 과제와 방향
오늘날 한국의 대학이 혁신을 요구받는 근본적인 이유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대학의 역할 또한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날 선진국가들과의 지식격차가 컸던 경제개발 단계에서 대학의 역할은 해외에서 축적된 지식과 기술을 전수하는 것으로 만족될 수 있었고, 정부의 역할은 그런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수를 늘리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선진국가들과의 지식격차가 현저히 좁혀진 오늘날 한국의 대학들은 지식의 전수뿐 아니라 지식의 창출까지도 담당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짊어지고 있다. 한국의 대학이 직면한 이 새로운 요구는 경제성장의 시대를 거쳐온 한국대학의 역사적 특수성과 관련된 문제인 동시에, 바야흐로 세계적 차원에서 고등교육 전체에 닥쳐올 대학혁신의 요구와 관련되어 있다.
지금 세계는 지식기반사회로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우수한 교육을 받은 인적 자원과 이들이 생산하는 지식이 곧 한 나라의 정신적·물질적 자산의 원천이 되고 있으며, 유형무형의 부와 가치를 창출하는 원동력이 직접적인 상품생산에서 지식의 생산으로 바뀌고 있다. 사회 어느 분야에서나 평생직장의 통념이 무너지고 있는 오늘날 개개인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종전처럼 정형화된 지식을 전수받는 것만으로는 미래사회의 복잡한 변화에 대처할 수 없다.
대학은 더 이상 기성지식의 전수기관이 아니라 미래를 창조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길러내는 곳으로 바뀌어야 한다. 학생들이 장차 어떤 직종에 종사하든, 평생 동안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며 지속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든든한 잠재역량을 키워주어야 한다. 요컨대 한국의 대학은 ‘모방을 통한 양적 팽창’에서 ‘창조를 통한 질적 성장’으로 거듭나야 한다. 한국 고등교육의 혁신은 이런 전제에서 대학의 역할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하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와 같은 전제 하에 한국의 고등교육이 추구해야 할 개혁의 과제를 대학 구조조정의 원칙과 방향, 고등교육의 질적 향상, 그리고 핵심 연구역량의 강화라는 세 측면으로 나누어 생각해보고자 한다.
대학 구조조정의 기본방향: 대학 규모의 축소와 대학별 특성화
대학 구조조정의 기본원칙은 학생들에게 훌륭한 교육을 제공할 능력을 갖춘 대학만이 고등교육 기관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능력 있는 대학이 곧 능력 있는 국가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한 경쟁과 합리적 절차에 따라 대학의 구조조정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전체적으로 교육의 효율성과 수월성이 제고되고 수준 높은 교육이 가능해질 수 있다.
미국의 대학들을 보면 수준 높은 교육을 위해 요구되는 교육비용이 실제로 확보가능한 교육재원을 점점 앞지르는 추세로 가고 있다. 미국의 국공립 대학 중에 최상위권에 드는 미시간 주립대학 같은 경우에도 대학기금을 확보하기 위해 수백 명의 전담직원을 고용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부나 사회에서 확보할 수 있는 교육재원이 대학의 기대치에 비해 너무나 취약하고, 교육에 투입될 수 있는 재원의 절대적 총량은 한정되어 있다. 그렇다고 등록금을 마냥 올릴 수도 없는 현실에서 고등교육의 질적 내실화를 위해 효율적인 교육체계를 갖추려면 우선 대학의 규모를 축소하는 데서부터 변화의 실마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
한국 대학의 교수 대 학생 비율은 우리와 비슷한 경제력을 가진 다른 나라들에 비해 현저히 높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는 강의실에 많은 학생들을 모아놓고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구태의연한 교육방식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지식의 창출은커녕 지식을 전수하는 역할조차 제대로 해내기 어렵다. 학생들은 단지 익명의 수강생 가운데 한 명으로 수업에 임하기 때문에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수업에 참여할 수 없고, 창의적인 학습과정을 체험할 기회를 가질 수 없다. 그런 식으로 수동적인 지식전달 교육만 받은 학생들이 장차 사회에 진출했을 때 사회의 역동적인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대학의 규모를 축소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 사회에 뿌리박힌 학력차별 문제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이른바 ‘sky 대학’이라 불리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 입학하는 신입생 수는 매년 1만 5천 명에 육박하고, 재학생 수를 기준으로 보면 10만 명의 학생들이 등록되어 있는 현실이다. 인구 2억 8천의 미국에서 (한 기준으로 본) 최상위권 10개 사립대학이 매년 배출하는 학생 수가 1만 명 남짓이라는 사실에 견주어 보면, 한국의 최상위권 대학에는 너무 많은 학생들이 몰려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세 대학 출신들이 사회의 요직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일이다. 이 대학들은 사회적 형평을 위해서나 최선의 교육을 위해서 학생 수를 과감히 줄여야 한다고 믿는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서울대학교는 내년도 입학 정원을 3천 8백여 명에서 3천 2백선으로 17% 정도 줄이기로 결정했으며, 앞으로도 가능하면 학생정원을 더 줄여나갈 생각이다.
대학 구조조정의 또 다른 축은 대학별 특성화를 지향하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대다수 대학들은 거의 비슷한 학제로 운영되고 있고, 대동소이한 내용의 교육을 하고 있다. 지역균형 발전의 취지에서 지방대학을 육성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전국 모든 지역의 대학들이 엇비슷한 성격과 규모의 대학을 유지한다면 소모적 경쟁과 자원의 낭비만 초래할 뿐이다. 균형적 발전이란 지역별 입지여건과 특성에 맞게 각 지역이 서로 다른 부문에서 고르게 비교우위를 가질 때만 제대로 성취될 수 있다.
대학원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한 대학이 대학원을 확충하면 다른 대학들도 이를 답습하여 국내 대학원 학생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그 결과 박사학위를 받고도 안정된 교육 및 연구 활동에 종사할 수 없는 박사 실업자가 수만 명에 이르는 인적 자원의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였다. 미국에서는 전체 대학의 3%에 불과한 극소수의 대학이 전체 교수요원의 4분의 3을 배출하고 있다. 지금처럼 일률적으로 균등화된 대학체제로는 다원화 사회가 요구하는 다양한 인재를 효과적으로 양성할 수 없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교육의 질적 향상: 기초교육 강화를 통한 전문교육의 내실화
지식 전수의 교육에서 지식 창출의 교육으로 전환하기 위한 핵심 고리는 기초교육의 강화에서 찾아야 한다. 지난날 한국 대학의 기초교육은 전공과정에 진입하기 위한 형식적 요건 정도로 소홀히 취급되어 왔다. 그 결과 전공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은 자기 분야밖에 모르는 편협한 근시안적 인간으로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대학에서 배운 전공지식이 직접적인 효용을 다했을 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여 지식을 확대 재생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지 못했다. 기초교육의 방치는 결과적으로 전문교육의 부실을 초래한 것이다.
실제로 기업 경영인들에게 들어 보면, 일부 언론에 보도된 통념과는 다르게, 사회에서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지식이나 기술 자체보다는 훌륭한 의사소통 능력, 변화에 적응하고 평생 동안 학습할 수 있는 능력,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과 건강한 시민의식, 남을 배려하고 다양한 가치를 인정할 줄 아는 인간적 품성, 세계를 보는 폭넓은 시야 등을 원하는 인재의 가장 중요한 자질로 꼽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한국의 대학은 ‘general’ education이라는 말의 본래 취지에 걸맞게, 학생들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배우고 전문교육의 기초를 다지는 동시에 바르게 사는 법을 터득할 수 있도록 ‘총체적’ 기초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 대학의 기초교육은 지금처럼 단지 지식을 전수하는 데 머물 것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다양한 문제의식을 계발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고, 스스로 학습하고 창의적 학습체험을 설계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산파역을 다해야 한다.
다른 한편 기초교육 강화는 전문교육의 내실을 다지기 위한 초석이 된다. 미래의 한국 대학생들은 첨단 컴퓨터 공학의 프로그램 설계가 성서 해석학의 인문학적 뿌리에서 지적 자양분을 얻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인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도 생명의 원리가 사회적 생태계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예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공학을 전공하든 사회과학을 전공하든 오늘날 태양 에너지 자원의 40%가 고갈되었다는 사태의 심각성에 눈뜨고 전 지구적 시야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지식과 정보의 총량이 폭발적으로 증대할수록 모든 학문 분야는 갈수록 더욱 긴밀한 관계로 얽혀지게 마련이며, 앞으로 그런 추세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따라서 대학에서의 전문교육이 지식기반 사회의 역동적 변화에 대처하여 지속적으로 고급지식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폭넓고 깊이 있는 기초교육과 전문교육의 상호연계성을 더욱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취지에서 서울대학교는 지난 2002년부터 인문학과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핵심교양 과목군을 설정하여, 예컨대 자연과학을 공부할 학생들도 반드시 다른 영역의 교과목을 일정수 이상 이수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학문의 가장 기본적인 기초능력이자 성숙한 지성인이 되기 위한 의사소통 능력이기도 한 글쓰기와 말하기 과목을 새로 개설하고, 학생들의 글쓰기 과정에서 부닥치는 문제들에 대해 직접 상담해주는 글쓰기 교실을 운영하는 한편, 모든 핵심교양 과목에 박사과정 대학원생들을 글쓰기 수업조교로 배치하여 글쓰기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공과대학에서 과학과 기술 글쓰기 과목과 공학수학 과목을 학문의 기초 영역에 필수과목으로 개설하여 이공학 전공교육의 기초를 다지고자 한다. 내년부터 개설될 프레쉬맨 세미나 역시 학문간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문제의식들을 학생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취지에서 마련된 것이다.
다른 한편 학생들에게 사회적 책임감과 성숙한 시민의식을 길러주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사회봉사활동을 경험할 수 있도록 가능하면 빠른 시일 내에 정식 교과과정에 도입할 생각이다. 그렇지 않아도 학생들의 수업부담이 과중한데 봉사활동까지 정식 과목으로 도입할 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그러나 학생들이 단지 개인의 영달만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공부가 장차 사회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는 책임감을 느낄 수 있다면 오히려 학업의 성취동기를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대학과 사회가 어떻게 다른가를 직접 경험해보는 것도 자신의 삶을 설계하는 데 좋은 자극이 될 것이다. 대학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봉사활동은 대학에 대한 사회적 지원의 반대급부로 요구된다는 측면에서도 대학이 외면할 수 없는 사회적 의무에 속한다.
핵심 연구역량의 강화: 첨단분야와 기초학문의 균형 육성
한국 대학의 연구역량은 취약한 연구기반에 비하면 괄목하게 성장하였다. 한국 대학 전체의 연구성과를 합치면 국가별로는 국민총생산의 순위에 해당하는 세계 13위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서울대의 경우 SCI에 등재된 논문의 수로는 지난 2002년 세계 34위로, 유럽 대학과 비교하면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 대학만이 우리보다 앞서 있다. 비슷한 규모의 미국 주립대학에 투입되는 예산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열악한 기반에서 이 정도의 성취를 이룬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 대학 전체를 놓고 보면 양적인 성장에 그치고 있을 뿐, 질적인 도약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솔직한 평가일 것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한국경제가 양적 성장에서 질적 내실화로 도약할 기로에 서 있듯,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핵심분야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과감한 지원육성책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 자리에 KIST 부원장께서 와 계시지만, 과거에 그랬듯이 서울대만 지원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 수요에 상응하는 적정한 인적 자원을 산정하여 능력 있는 인재를 기를 수 있는 대학들에 다같이 집중적인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핵심 연구역량 강화 문제는 앞서 말한 대학별 특성화 전략의 틀 안에서 고려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근 몇 년 동안 미국 국립과학위원회가 분석한 것을 보면, 연구투자에 대한 사회적 회수율은 50-60%로 자본투자의 회수율 10-14%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산업특허에 인용된 논문의 73%가 정부나 민간에서 지원하는 연구에 기초해 있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인적 자원에 대한 투자가 한국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핵심 연구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기초학문의 강화 역시 한국 대학의 시급한 과제로 다가와 있다. 과거에는 선진국의 연구를 모방하여 지식을 전수하는 것으로 연구의 소임을 다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우리 대학이 고급지식을 창출할 수 있는 자생적 기반을 다져야 한다. 또 앞에서 말한 기초교육의 강화를 제대로 위해서도 한국의 대학은 우수한 교수요원을 양성해야 한다. 그럼에도 기초학문 분야의 연구여건은 그러한 시대적 요구를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열악하다.
오늘날 기초학문 연구 역시 기초교육과 마찬가지로 총체적인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전세계의 변화에 대해서도 폭넓고 깊이 있는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고, 우리가 비교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는 동아시아 연구나 한국학 연구에도 역량을 투입해야 하며,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심층적 분석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서울대는 우선 교육의 차원에서 학문후속세대에 대한 교육의 질적 강화를 위해 대학원생 정원을 줄이는 한편, 내년부터는 1600명의 대학원생들에게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장학금 전액과 최소 생활비를 지원한다. 교수님들의 연구여건 개선을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재원이 필요하지만, 당장에는 대학운영의 제반 경비를 절감해서라도 단계적으로 연구여건을 개선하는 데 힘쓰고자 한다.
4. 정부와 사회에 대한 요청
대학과 정부와 사회가 긴밀한 동반자적 관계를 바탕으로 지식기반사회의 도전에 부응하지 않으면 밝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대학은 단지 사회의 기능적 일부가 아니라 국가발전을 선도하고 우리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갈 인재를 길러내는 곳이라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대학이 바뀌기 위해서는 먼저 대학들 스스로 현실을 직시하고 최상의 교육과 연구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대학만의 힘으로 그런 목적을 이루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인 것도 사실이다. 한국의 대학이 세계적 수준의 교육과 연구를 성취할 수 있기 위해서는 정부와 사회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다. 그런 취지에서 정부와 사회에 바라는 요청사항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았다.
(1) 고등교육과 연구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데는 대학이 감당할 수 없는 많은 비용이 들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교육에 대한 투자가 우리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관점에서 재정적 지원을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아울러 대학의 교육과 연구를 위한 민간의 지원을 촉진할 수 있도록 대학에 대한 민간의 지원기금에 대해서는 더욱 파격적인 세제혜택 등의 유인을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교육의 기본지표라 할 수 있는 학생 1인당 교육경비, 교수 대 학생 비율, 학생 1인당 도서관 장서 수 등을 개선할 수 있도록 과감한 교육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2) 지식창출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연구를 시작하는 학문후속세대나 연구의 본궤도에 진입한 기존 연구자 모두를 위한 지원체계를 확립하고 더욱 강화해야 한다. 일부 분야에만 치우쳐 있는 연구지원 체계를 개선하여 다양한 분야들이 서로 유기적 상승효과를 낼 수 있도록 균형 있는 종합적 지원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고급지식 창출을 위해 필요한 연구에 대해서는 연구의 전 기간에 걸쳐 지속적인 지원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3) 특히 민간 차원의 지원이 거의 전무한 기초학문 분야에 대한을 대폭 늘려야 한다. 날로 커지는 취업난의 여파로 학생들은 기초학문 분야를 외면하고 당장에 필요한 자격증 획득에 유리한 분야로만 몰리고 있다. 이런 현상이 계속 방치된다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할 수 있는 연구역량을 강화하는 데 심각한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4)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의 긴밀한 연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한국의 학부모들은 자녀를 대학에 보내기 전까지는 교육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정열과 관심을 쏟는 반면, 정작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대학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학부모들의 교육열은 차라리 입시열이라 해도 틀림이 없다. 대학교육의 현장에 있는 분들 역시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지 무엇을 어떻게 배웠는지 모를뿐더러 대다수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우리 교육자, 학부모, 그리고 일반국민 모두는 이제 대학입시라는 하나의 고리만이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을 연계하고 있는 것과 같은 형국을 보면서 교육의 본질이 얼마나 심하게 왜곡 훼손되어 있는지 절실하게 반성해야 한다. 오직 대학 입시만을 수단으로 하여 공교육의 정상화와 사교육비 절감의 묘안을 짜내려드는 조급함도 비슷한 성격의 중대한 잘못이다. 그 모두가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이 하나의 전체적인 교육과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비교육적 인식에서 비롯한 잘못인 것이다.
(5) 대학의 자율성이 과거에 비해 많이 신장되었지만, 앞으로 대학은 더 큰 자율성을 가져야 한다. 더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해 해외로 나가려는 인력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도 그렇다. 유능한 학생과 교수들을 유치하고 혁신적인 교과과정을 만드는 데 제한이 있어서는 안 된다. 연구의 측면에서도 해당 연구단위의 운용은 외부로부터의 통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교육과 연구와 행정에서 최대한의 자율을 허용할 때 시대환경의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양질의 교육과 연구가 가능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 운 찬 (서울대학교 총장)
1. 전환기의 한국사회
지금 우리 사회는 지난 수십 년의 근대화 과정에서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지난날에는 경제성장과 민주화라는 두 지상과제가 서로 갈등을 일으키면서도 결과적으로는 국민적 통합의 강력한 동인으로 작용하였다. 실제로 우리와 비슷하게 열악한 상황에서 근대화를 시작한 나라들 중 한국만큼 비약적인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진전을 동시에 이룩한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만큼 우리가 지난날 빈곤과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친 노력은 장차 더 나은 사회를 일구기 위해 반드시 기억되어야 할 소중한 역사적 경험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갈등의 양상을 지켜보면, 과거의 값진 유산만으로 밝은 미래가 저절로 담보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정치권은 여전히 국민의 절실한 여망을 외면한 채 파당적 이해관계에만 매달리고 있으며, 시민사회 역시 국민적 관심이 쏠리는 사안마다 극단적 분열과 대립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회 구성원들이 이처럼 제각각의 입장과 이해관계만 고수하면서 양보와 타협의 정신을 발휘하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는 기약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과 혼란이 우발적으로 돌출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 갈등과 혼란은 한 시대를 마감하고 다음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역사적 과도기의 진통이라 생각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자명한 목표로 추구해온 근대화의 패러다임을 좀더 성숙한 형태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 사회가 정치적·제도적 민주화는 이루었지만 정작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실천적 능력은 여전히 미성숙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제는 누구나 마시는 공기처럼 누리게 된 자유의 반대급부로, 우리는 상충하는 의견들이 대립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와 같은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은 아직 길러지지 못한 상태인 것이다. 남의 처지와 입장을 배려하고 존중할 줄 아는 관용의 자세가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이라면, 그런 정신이 실종된 상태에서는 아무리 그럴듯한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결코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가치관은 과연 무엇이며 또 어떻게 창출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와 같은 가치관의 바탕 위에서 우리가 만들어내야 할 바람직한 미래 사회의 모습은 과연 어떤 것이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우리 사회는 이런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고민을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될 시점에 도달해 있다.
다른 한편 우리는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삶의 불안이 가중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지난날 우리는 경제성장을 통해 그러한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한국경제가 세계 톱 수준은 아니지만 국민총생산 500조원 이상 (5000억 달러 가까운 정도)의 규모로 성장한 오늘날 과연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자문해볼 때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무한경쟁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생존 그 자체가 위협 받는 상황에 처해 있으며, 빈부의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져서 국민적 통합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도처에서 목격되는 위험성의 갖가지 징후를 볼 때, 이제 경제성장이라는 단선적 처방을 통해서는 해결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음을 절감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은 규모로 커진 한국경제가 과거와 비슷한 수준으로 계속 성장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이제는 지금까지의 성장의 신화에서 깨어나야 한다. 물론 더 잘살기 위해 아직도 성장은 필요하고 국제사회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국가 경쟁력은 지속적으로 확보해야 하며 또 이를 뒷받침할 여러 가지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민 개개인의 능력과 여건에 맞게 안정된 삶을 설계할 수 있도록 사회의 불안 요인들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역량과 지혜를 모으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해졌다. 여기에 우리의 어려움이 있다.
우리는 비록 규모는 세계 1,2등이 아니더라도 국민 대다수의 삶의 질을 알차게 다져서 우리 사회에 건강한 활력을 불어넣는 강건한 경제를 구축하여야 한다. 그리고 과거의 고도성장은 불가능하지만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동시에 외국과 잘 지내고 더 나아가 인류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국가를 지향해야 한다. 그런 강소국가(强小國家)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일류국가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수많은 문제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누적된 복합적인 요인에 기인한다. 따라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정부와 민간 차원의 다각적인 진단과 처방, 지속적인 노력과 인내가 요구된다. 그렇지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는 장차 우리 사회에 닥쳐올 예측불허의 도전들을 능히 감당해낼 수 있는 훌륭한 인적 자원을 길러내는 일이다.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우리 사회와 국가의 미래는 교육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한 걸음 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다시 정체와 퇴보의 늪에 빠져들 것인가 하는 전환기의 기로에서 교육의 문제에 더 큰 관심과 고민을 집중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2. 한국 고등교육의 현황
오늘날 대학의 책무는 과거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대학은 시대의 변화를 올바르게 읽어내고 예측하여 지속적인 사회발전의 동력을 제공하는 한편, 국가의 지적 자산을 산출할 책임을 갖고 있다. 나아가 국가 운영과 경제 안정을 위한 적절한 방안을 계발하고, 사회 전반의 유기적 의사소통과 사회복지를 증진하는 데도 기여해야 한다. 시민사회와 시장에 대한 신뢰가 갈수록 중요하게 부각되는 오늘날, 대학의 공적 역할과 책임은 더더욱 커지고 있다. 사회에 대한 대학의 역할과 책임을 등한히 하는 것이야말로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한 가장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다.
앞에서 우리 사회 도처에서 분출하는 갈등에 관해 언급했지만, 교육의 관점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지금의 사회적 혼란은 결국 지난날의 잘못된 교육이 가하는 보복이라는 것을 뼈아픈 교훈으로 되새겨야 한다. 이런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대학은 우리 사회의 부단한 도전들에 응전하기 위해 언제나 변화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하고 한시라도 자기혁신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대학과 사회는 생산적인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자극과 도움을 주어야 하는 동반자적 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대학은 학생들에게 창조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능력을 함양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교육을 해야 한다. 학생들은 대학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계발하고 창의적 지식을 습득해야 하며, 사물을 올바르게 판단하는 능력과 사회적 책임감, 그리고 성숙한 시민의식을 길러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대학교육은 성공적인 국가의 미래와 직결되어 있다.
이처럼 대학교육의 성패가 국가의 장래를 좌우한다면, 과연 우리의 대학은 고등교육의 막중한 책무에 상응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 그리고 고등교육이 제 구실을 다하기 위한 여건은 제대로 갖추어져 있는가. 한국의 고등교육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내실을 다지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 고등교육이 직면해 있는 현실을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지난날 한국의 대학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감당해온 지대한 역할은 인정할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가 이만큼 발전한 것은 전 국민의 피땀 어린 노력과 참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그러한 성취동기와 성장의 동력은 무엇보다 대학교육에 힘입은 바 크다. 1970년만 해도 8.4%에 불과하던 한국의 고등교육 취학률은 2001년에 83.7%로 열 배나 늘어났다. 이처럼 고등교육의 기회가 유례없이 확대되면서 사회 각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 인력을 적절히 공급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대학은 고도성장의 시대가 요구했던 사회적 역할을 어느 정도 충족시켰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성장위주의 경제정책이 경제의 규모를 불리면서 다른 한편으로 경제의 부실을 초래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대학의 양적 팽창이 가져온 부작용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대학에 몸담고 있는 분들이 모두 우려하고 있듯, 1990년대 이후 한국 대학의 수준은 점차 하락하고 있으며, 그것은 대학생의 전반적인 기초학력 저하라는 현상에서 단적으로 확인될 수 있다. 우리가 교육 선진국으로 알고 있는 일본에서도 최근 ‘동경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라는 개탄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지만, 한국 대학생의 기초학력 저하 역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급증하는 학생들을 수용하기 위해 대학의 숫자를 늘려왔지만 정작 교육의 질 향상에는 실패했으며, 대학 역시 문제의 심각성을 제때에 간파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 전체적으로 볼 때 한국의 대학들은 외형상의 규모를 불려 왔지만, 교육과 연구의 질을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는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한국의 대학들은 그동안 다른 대학을 모방하는 이른바 ‘나도주의’에 빠져서 교육의 질과는 관계없이 양적 팽창에 주력해 왔다. 다시 말해 다른 대학이 하는 대로 따라서 해야 손해를 안 본다는 잘못된 경쟁의식에 사로잡혀 왔던 것이다. 예를 들어 정부의 고급 기술인력 양성정책에 따라 한 대학이 공과대학 학생정원을 늘리면 전국의 모든 대학들이 다같이 공과대학 학생정원을 늘렸다. 지금도 고급 기술인력에 대한 필요는 절실하지만, 그와 같은 양 위주의 교육으로는 ‘고급’ 기술인력을 길러낼 수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최근 우수한 학생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으로 교육여건이 더 열악해진 현실을 감안할 때, 수준 높은 교육이 가능하도록 과감한 혁신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동안 한국의 대학은 경제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인 ‘규모의 경제’가 대학에도 적용된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왔다. ‘대학의 규모를 키우고 학생 수를 늘리면 원가절감이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대학과 학생 수를 늘려온 것이다. 그 결과 지금 한국의 대학은 4년제 대학이 200개, 전문대학이 160개로 팽창하였고, 대학생 수는 전 인구의 4.07%로 세계 최고의 규모에 이르렀다. 대학원생 숫자 역시 인구 1천 명당 6.1명으로 미국의 3.9명, 일본의 1.7명에 비해 기형적으로 많은 상황이다. 대학 평준화가 가장 잘 된 나라로 흔히 독일을 꼽지만,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는 4년제 종합대학이 세 개밖에 없다.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하여 고등교육의 위상에 걸맞게 양질의 교육을 하기 때문에 대학의 수준이 다같이 고르게 높아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대학교육은 양적 팽창만 추구하는 규모의 경제에 의존하다 보니 이제는 ‘너무 커서 좋은 제품이 나오기 힘든 산업’이 되어버렸다.
1997/98년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한국경제는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그 결과 경제의 투명성이 상당히 제고되면서 부실을 걸러내는 기본 장치가 어느 정도 마련되었다. 당시의 구조조정은 공정한 경쟁과 투명한 경영을 통해 기업들의 국제경쟁력을 회복하는 데 기여하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경제와 달리 대학은 교육의 양적 팽창으로 야기될 위기의 징후를 감지하지 못한 채 구조조정의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대학이 구조조정의 시기를 놓치고 자기만족에 안주함으로써 이제 한국의 대학개혁은 비용이 많이 들고 절차가 복잡한 버거운 과제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부실을 안고 있는 기업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듯, 앞으로는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여건과 능력을 갖추지 못한 대학 역시 살아남을 수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대학의 구조조정은 대학의 생존을 위해서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박한 과제로 다가와 있다.
3. 한국 고등교육 개혁의 과제와 방향
오늘날 한국의 대학이 혁신을 요구받는 근본적인 이유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대학의 역할 또한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날 선진국가들과의 지식격차가 컸던 경제개발 단계에서 대학의 역할은 해외에서 축적된 지식과 기술을 전수하는 것으로 만족될 수 있었고, 정부의 역할은 그런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수를 늘리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선진국가들과의 지식격차가 현저히 좁혀진 오늘날 한국의 대학들은 지식의 전수뿐 아니라 지식의 창출까지도 담당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짊어지고 있다. 한국의 대학이 직면한 이 새로운 요구는 경제성장의 시대를 거쳐온 한국대학의 역사적 특수성과 관련된 문제인 동시에, 바야흐로 세계적 차원에서 고등교육 전체에 닥쳐올 대학혁신의 요구와 관련되어 있다.
지금 세계는 지식기반사회로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우수한 교육을 받은 인적 자원과 이들이 생산하는 지식이 곧 한 나라의 정신적·물질적 자산의 원천이 되고 있으며, 유형무형의 부와 가치를 창출하는 원동력이 직접적인 상품생산에서 지식의 생산으로 바뀌고 있다. 사회 어느 분야에서나 평생직장의 통념이 무너지고 있는 오늘날 개개인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종전처럼 정형화된 지식을 전수받는 것만으로는 미래사회의 복잡한 변화에 대처할 수 없다.
대학은 더 이상 기성지식의 전수기관이 아니라 미래를 창조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길러내는 곳으로 바뀌어야 한다. 학생들이 장차 어떤 직종에 종사하든, 평생 동안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며 지속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든든한 잠재역량을 키워주어야 한다. 요컨대 한국의 대학은 ‘모방을 통한 양적 팽창’에서 ‘창조를 통한 질적 성장’으로 거듭나야 한다. 한국 고등교육의 혁신은 이런 전제에서 대학의 역할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하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와 같은 전제 하에 한국의 고등교육이 추구해야 할 개혁의 과제를 대학 구조조정의 원칙과 방향, 고등교육의 질적 향상, 그리고 핵심 연구역량의 강화라는 세 측면으로 나누어 생각해보고자 한다.
대학 구조조정의 기본방향: 대학 규모의 축소와 대학별 특성화
대학 구조조정의 기본원칙은 학생들에게 훌륭한 교육을 제공할 능력을 갖춘 대학만이 고등교육 기관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능력 있는 대학이 곧 능력 있는 국가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한 경쟁과 합리적 절차에 따라 대학의 구조조정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전체적으로 교육의 효율성과 수월성이 제고되고 수준 높은 교육이 가능해질 수 있다.
미국의 대학들을 보면 수준 높은 교육을 위해 요구되는 교육비용이 실제로 확보가능한 교육재원을 점점 앞지르는 추세로 가고 있다. 미국의 국공립 대학 중에 최상위권에 드는 미시간 주립대학 같은 경우에도 대학기금을 확보하기 위해 수백 명의 전담직원을 고용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부나 사회에서 확보할 수 있는 교육재원이 대학의 기대치에 비해 너무나 취약하고, 교육에 투입될 수 있는 재원의 절대적 총량은 한정되어 있다. 그렇다고 등록금을 마냥 올릴 수도 없는 현실에서 고등교육의 질적 내실화를 위해 효율적인 교육체계를 갖추려면 우선 대학의 규모를 축소하는 데서부터 변화의 실마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
한국 대학의 교수 대 학생 비율은 우리와 비슷한 경제력을 가진 다른 나라들에 비해 현저히 높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는 강의실에 많은 학생들을 모아놓고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구태의연한 교육방식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지식의 창출은커녕 지식을 전수하는 역할조차 제대로 해내기 어렵다. 학생들은 단지 익명의 수강생 가운데 한 명으로 수업에 임하기 때문에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수업에 참여할 수 없고, 창의적인 학습과정을 체험할 기회를 가질 수 없다. 그런 식으로 수동적인 지식전달 교육만 받은 학생들이 장차 사회에 진출했을 때 사회의 역동적인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대학의 규모를 축소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 사회에 뿌리박힌 학력차별 문제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이른바 ‘sky 대학’이라 불리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 입학하는 신입생 수는 매년 1만 5천 명에 육박하고, 재학생 수를 기준으로 보면 10만 명의 학생들이 등록되어 있는 현실이다. 인구 2억 8천의 미국에서 (한 기준으로 본) 최상위권 10개 사립대학이 매년 배출하는 학생 수가 1만 명 남짓이라는 사실에 견주어 보면, 한국의 최상위권 대학에는 너무 많은 학생들이 몰려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세 대학 출신들이 사회의 요직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일이다. 이 대학들은 사회적 형평을 위해서나 최선의 교육을 위해서 학생 수를 과감히 줄여야 한다고 믿는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서울대학교는 내년도 입학 정원을 3천 8백여 명에서 3천 2백선으로 17% 정도 줄이기로 결정했으며, 앞으로도 가능하면 학생정원을 더 줄여나갈 생각이다.
대학 구조조정의 또 다른 축은 대학별 특성화를 지향하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대다수 대학들은 거의 비슷한 학제로 운영되고 있고, 대동소이한 내용의 교육을 하고 있다. 지역균형 발전의 취지에서 지방대학을 육성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전국 모든 지역의 대학들이 엇비슷한 성격과 규모의 대학을 유지한다면 소모적 경쟁과 자원의 낭비만 초래할 뿐이다. 균형적 발전이란 지역별 입지여건과 특성에 맞게 각 지역이 서로 다른 부문에서 고르게 비교우위를 가질 때만 제대로 성취될 수 있다.
대학원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한 대학이 대학원을 확충하면 다른 대학들도 이를 답습하여 국내 대학원 학생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그 결과 박사학위를 받고도 안정된 교육 및 연구 활동에 종사할 수 없는 박사 실업자가 수만 명에 이르는 인적 자원의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였다. 미국에서는 전체 대학의 3%에 불과한 극소수의 대학이 전체 교수요원의 4분의 3을 배출하고 있다. 지금처럼 일률적으로 균등화된 대학체제로는 다원화 사회가 요구하는 다양한 인재를 효과적으로 양성할 수 없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교육의 질적 향상: 기초교육 강화를 통한 전문교육의 내실화
지식 전수의 교육에서 지식 창출의 교육으로 전환하기 위한 핵심 고리는 기초교육의 강화에서 찾아야 한다. 지난날 한국 대학의 기초교육은 전공과정에 진입하기 위한 형식적 요건 정도로 소홀히 취급되어 왔다. 그 결과 전공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은 자기 분야밖에 모르는 편협한 근시안적 인간으로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대학에서 배운 전공지식이 직접적인 효용을 다했을 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여 지식을 확대 재생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지 못했다. 기초교육의 방치는 결과적으로 전문교육의 부실을 초래한 것이다.
실제로 기업 경영인들에게 들어 보면, 일부 언론에 보도된 통념과는 다르게, 사회에서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지식이나 기술 자체보다는 훌륭한 의사소통 능력, 변화에 적응하고 평생 동안 학습할 수 있는 능력,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과 건강한 시민의식, 남을 배려하고 다양한 가치를 인정할 줄 아는 인간적 품성, 세계를 보는 폭넓은 시야 등을 원하는 인재의 가장 중요한 자질로 꼽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한국의 대학은 ‘general’ education이라는 말의 본래 취지에 걸맞게, 학생들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배우고 전문교육의 기초를 다지는 동시에 바르게 사는 법을 터득할 수 있도록 ‘총체적’ 기초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 대학의 기초교육은 지금처럼 단지 지식을 전수하는 데 머물 것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다양한 문제의식을 계발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고, 스스로 학습하고 창의적 학습체험을 설계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산파역을 다해야 한다.
다른 한편 기초교육 강화는 전문교육의 내실을 다지기 위한 초석이 된다. 미래의 한국 대학생들은 첨단 컴퓨터 공학의 프로그램 설계가 성서 해석학의 인문학적 뿌리에서 지적 자양분을 얻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인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도 생명의 원리가 사회적 생태계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예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공학을 전공하든 사회과학을 전공하든 오늘날 태양 에너지 자원의 40%가 고갈되었다는 사태의 심각성에 눈뜨고 전 지구적 시야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지식과 정보의 총량이 폭발적으로 증대할수록 모든 학문 분야는 갈수록 더욱 긴밀한 관계로 얽혀지게 마련이며, 앞으로 그런 추세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따라서 대학에서의 전문교육이 지식기반 사회의 역동적 변화에 대처하여 지속적으로 고급지식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폭넓고 깊이 있는 기초교육과 전문교육의 상호연계성을 더욱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취지에서 서울대학교는 지난 2002년부터 인문학과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핵심교양 과목군을 설정하여, 예컨대 자연과학을 공부할 학생들도 반드시 다른 영역의 교과목을 일정수 이상 이수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학문의 가장 기본적인 기초능력이자 성숙한 지성인이 되기 위한 의사소통 능력이기도 한 글쓰기와 말하기 과목을 새로 개설하고, 학생들의 글쓰기 과정에서 부닥치는 문제들에 대해 직접 상담해주는 글쓰기 교실을 운영하는 한편, 모든 핵심교양 과목에 박사과정 대학원생들을 글쓰기 수업조교로 배치하여 글쓰기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공과대학에서 과학과 기술 글쓰기 과목과 공학수학 과목을 학문의 기초 영역에 필수과목으로 개설하여 이공학 전공교육의 기초를 다지고자 한다. 내년부터 개설될 프레쉬맨 세미나 역시 학문간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문제의식들을 학생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취지에서 마련된 것이다.
다른 한편 학생들에게 사회적 책임감과 성숙한 시민의식을 길러주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사회봉사활동을 경험할 수 있도록 가능하면 빠른 시일 내에 정식 교과과정에 도입할 생각이다. 그렇지 않아도 학생들의 수업부담이 과중한데 봉사활동까지 정식 과목으로 도입할 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그러나 학생들이 단지 개인의 영달만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공부가 장차 사회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는 책임감을 느낄 수 있다면 오히려 학업의 성취동기를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대학과 사회가 어떻게 다른가를 직접 경험해보는 것도 자신의 삶을 설계하는 데 좋은 자극이 될 것이다. 대학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봉사활동은 대학에 대한 사회적 지원의 반대급부로 요구된다는 측면에서도 대학이 외면할 수 없는 사회적 의무에 속한다.
핵심 연구역량의 강화: 첨단분야와 기초학문의 균형 육성
한국 대학의 연구역량은 취약한 연구기반에 비하면 괄목하게 성장하였다. 한국 대학 전체의 연구성과를 합치면 국가별로는 국민총생산의 순위에 해당하는 세계 13위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서울대의 경우 SCI에 등재된 논문의 수로는 지난 2002년 세계 34위로, 유럽 대학과 비교하면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 대학만이 우리보다 앞서 있다. 비슷한 규모의 미국 주립대학에 투입되는 예산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열악한 기반에서 이 정도의 성취를 이룬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 대학 전체를 놓고 보면 양적인 성장에 그치고 있을 뿐, 질적인 도약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솔직한 평가일 것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한국경제가 양적 성장에서 질적 내실화로 도약할 기로에 서 있듯,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핵심분야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과감한 지원육성책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 자리에 KIST 부원장께서 와 계시지만, 과거에 그랬듯이 서울대만 지원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 수요에 상응하는 적정한 인적 자원을 산정하여 능력 있는 인재를 기를 수 있는 대학들에 다같이 집중적인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핵심 연구역량 강화 문제는 앞서 말한 대학별 특성화 전략의 틀 안에서 고려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근 몇 년 동안 미국 국립과학위원회가 분석한 것을 보면, 연구투자에 대한 사회적 회수율은 50-60%로 자본투자의 회수율 10-14%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산업특허에 인용된 논문의 73%가 정부나 민간에서 지원하는 연구에 기초해 있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인적 자원에 대한 투자가 한국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핵심 연구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기초학문의 강화 역시 한국 대학의 시급한 과제로 다가와 있다. 과거에는 선진국의 연구를 모방하여 지식을 전수하는 것으로 연구의 소임을 다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우리 대학이 고급지식을 창출할 수 있는 자생적 기반을 다져야 한다. 또 앞에서 말한 기초교육의 강화를 제대로 위해서도 한국의 대학은 우수한 교수요원을 양성해야 한다. 그럼에도 기초학문 분야의 연구여건은 그러한 시대적 요구를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열악하다.
오늘날 기초학문 연구 역시 기초교육과 마찬가지로 총체적인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전세계의 변화에 대해서도 폭넓고 깊이 있는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고, 우리가 비교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는 동아시아 연구나 한국학 연구에도 역량을 투입해야 하며,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심층적 분석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서울대는 우선 교육의 차원에서 학문후속세대에 대한 교육의 질적 강화를 위해 대학원생 정원을 줄이는 한편, 내년부터는 1600명의 대학원생들에게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장학금 전액과 최소 생활비를 지원한다. 교수님들의 연구여건 개선을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재원이 필요하지만, 당장에는 대학운영의 제반 경비를 절감해서라도 단계적으로 연구여건을 개선하는 데 힘쓰고자 한다.
4. 정부와 사회에 대한 요청
대학과 정부와 사회가 긴밀한 동반자적 관계를 바탕으로 지식기반사회의 도전에 부응하지 않으면 밝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대학은 단지 사회의 기능적 일부가 아니라 국가발전을 선도하고 우리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갈 인재를 길러내는 곳이라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대학이 바뀌기 위해서는 먼저 대학들 스스로 현실을 직시하고 최상의 교육과 연구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대학만의 힘으로 그런 목적을 이루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인 것도 사실이다. 한국의 대학이 세계적 수준의 교육과 연구를 성취할 수 있기 위해서는 정부와 사회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다. 그런 취지에서 정부와 사회에 바라는 요청사항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았다.
(1) 고등교육과 연구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데는 대학이 감당할 수 없는 많은 비용이 들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교육에 대한 투자가 우리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관점에서 재정적 지원을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아울러 대학의 교육과 연구를 위한 민간의 지원을 촉진할 수 있도록 대학에 대한 민간의 지원기금에 대해서는 더욱 파격적인 세제혜택 등의 유인을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교육의 기본지표라 할 수 있는 학생 1인당 교육경비, 교수 대 학생 비율, 학생 1인당 도서관 장서 수 등을 개선할 수 있도록 과감한 교육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2) 지식창출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연구를 시작하는 학문후속세대나 연구의 본궤도에 진입한 기존 연구자 모두를 위한 지원체계를 확립하고 더욱 강화해야 한다. 일부 분야에만 치우쳐 있는 연구지원 체계를 개선하여 다양한 분야들이 서로 유기적 상승효과를 낼 수 있도록 균형 있는 종합적 지원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고급지식 창출을 위해 필요한 연구에 대해서는 연구의 전 기간에 걸쳐 지속적인 지원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3) 특히 민간 차원의 지원이 거의 전무한 기초학문 분야에 대한을 대폭 늘려야 한다. 날로 커지는 취업난의 여파로 학생들은 기초학문 분야를 외면하고 당장에 필요한 자격증 획득에 유리한 분야로만 몰리고 있다. 이런 현상이 계속 방치된다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할 수 있는 연구역량을 강화하는 데 심각한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4)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의 긴밀한 연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한국의 학부모들은 자녀를 대학에 보내기 전까지는 교육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정열과 관심을 쏟는 반면, 정작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대학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학부모들의 교육열은 차라리 입시열이라 해도 틀림이 없다. 대학교육의 현장에 있는 분들 역시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지 무엇을 어떻게 배웠는지 모를뿐더러 대다수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우리 교육자, 학부모, 그리고 일반국민 모두는 이제 대학입시라는 하나의 고리만이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을 연계하고 있는 것과 같은 형국을 보면서 교육의 본질이 얼마나 심하게 왜곡 훼손되어 있는지 절실하게 반성해야 한다. 오직 대학 입시만을 수단으로 하여 공교육의 정상화와 사교육비 절감의 묘안을 짜내려드는 조급함도 비슷한 성격의 중대한 잘못이다. 그 모두가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이 하나의 전체적인 교육과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비교육적 인식에서 비롯한 잘못인 것이다.
(5) 대학의 자율성이 과거에 비해 많이 신장되었지만, 앞으로 대학은 더 큰 자율성을 가져야 한다. 더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해 해외로 나가려는 인력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도 그렇다. 유능한 학생과 교수들을 유치하고 혁신적인 교과과정을 만드는 데 제한이 있어서는 안 된다. 연구의 측면에서도 해당 연구단위의 운용은 외부로부터의 통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교육과 연구와 행정에서 최대한의 자율을 허용할 때 시대환경의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양질의 교육과 연구가 가능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