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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학점에 좌절하면 지는 거다

2011.12.20.

교육상 수상자 인터뷰, 안경원 교수, C학점에 좌절하면 지는 거다

‘기초 물리학’ 강의실에 앉은 자연과학부 1학년생들의 눈빛은 초롱초롱 빛난다. 가슴 속에는 노벨상의 꿈이 있고, 초등학생 시절부터 쌓아온 작은 성공의 기억들은 자신감이 되어 있다.

이들은 5월이 되면 다 같이 중간고사를 본다. 엠티도 가고 연애도 걸어보며 대학생활에 적응하던 평범한 일반고 출신 신입생이, 지나치게 난해한 문제들만 빼고 다 풀어 내면 70점 언저리를 받는다. 나름대로 ‘열공’해야 가능한 점수다.

하지만 성적은 상대평가이고, 아무리 어렵게 내도 평균은 늘상 70점을 넘기고 말며, 만점을 받는 ‘괴물’ 신입생도 늘상 있어서, 이 ‘평범한 학생’에게는 결국 C학점이 주어진다.

“학생들이 이 때 인생 최고의 위기를 맞는 겁니다. 이 때 C학점에 대처하는 자세가 나머지 삶을 갈라 놓습니다.” 2011년 교육상을 수상한 물리천문학부 안경원 교수는 스무살 학부생들의 속내가 훤히 보인다는 듯이 실감나게 설명했다.

이 때 난생 처음으로 ‘평균점수'를 받았다는 충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수치심을 내면화하게 되면, 그 학생은 일평생 함께 할 줄 알았던 과학의 꿈과 서서히 멀어지고 만다는 것이다.

물리학과가 ‘천재 집합소’이던 70년대에 입학했던 안 교수의 학생 시절에는 좌절이 더 흔했다. 하지만 그는 특별하지 못한 성적을 받을 때도, 동기들이 모두 천재로 보일 때에도, 좌절하지 않고 버텼다고 한다.

“근거 없는 자신감, 그거 하나로 버텼어요. 살아가면서 그게 정말 중요하더군요.”
그것이 아니었다면, 세계 최초로 ‘단원자 마이크로 레이저’를 개발한 유망한 물리학자는 탄생하지 않았을 지 모른다.

MIT에서 참 교육을 만나다

안경원 교수는 MIT 유학시절 지도교수를 통해 진짜 교육이 무엇인지 깨달았다고 말한다.

신입생 시절 용기를 내어 했는데, 당시는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배우는 것이 너무 달랐고 그의 영어조차 서툴러서 질문은 내용을 알 수 없게 꼬여 버렸다.

종종 노하는 모습을 보이시던 무서운 한국 교수님들과는 달리, 노련한 교수는 끝까지 귀를 기울여 어린 학생의 질문을 재정의해서 다시 물었다. 좋은 질문이라는 칭찬까지 주었다. 묻혀 있던 한 아시아인의 잠재력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지도 교수는 그 뒤로도 항상 용기를 주는 (encouraging) 자세를 견지했고 안 교수는 누구보다 당당한 멤버가 되었다. 지도교수는 2년이 지난 후부터 안 교수에게 encourage를 접고 push하기 시작했다.

그 교수가 “바보를 천재로 만드는 데 걸리는 2년이 걸린다”는 ‘2년의 법칙’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은 안 교수는 나중에야 알았다고 한다.

바보가 천재가 되는데 걸리는 시간, 2년!

거대한 과학의 바다에 뛰어 들면, 누구나 처음에는 바보일 수 밖에 없다고 안 교수는 설명했다."이 바보들이 수영할 수 있을 때까지 2년 동안은 무조건 encourage를 해야 한다. 그리고 익사할 위험이 없다고 판단되면 push를 시작한다." 이것이 안경원 교수가 MIT에서 직수입한 ‘2년의 법칙’이다.

그가 ‘최고의 제자’로 꼽는 이 중에 한 사람은 의외로 지방대학 출신의 여제자다. 그녀는 우수한 학부 성적으로 입학했지만, 본교 최우수 졸업자들과 동기로 입학하면서 좌절을 겪고 상담을 요청했었다. “아무래도 재능이 없는 것 같아 석사만 받고 공부를 그만해야 할 것 같다”며 울먹이는 그녀를 보며, 안 교수는 2년을 기다리기로 한다. 2년 동안 수업 시간에나 실험을 할 때 매 번 그녀의 장점과 가능성을 찾아내고 칭찬해 주었다. 순조롭게 2년을 보내고 박사과정에 진학한 그녀는 숱한 논문을 쏟아내며 섬세한 리더십으로 실험실을 이끌어 가는 최고의 학생이 되었다.

그 이후 안경원 교수는 어떤 제자라도 2년만 기다리면 천재가 될 가능성의 소유자로 바라보며 인내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제 양적 연구성과에 집착하기 보다는 질적으로 우수한 연구를 해 내고 있습니다. 지금 과학하겠다고 대학 온 인재들을 떠나 보내지 않고 가능성을 끌어내 준다면 머지않아 우리나라도 노벨상 수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11.12.21
서울대학교 홍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