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1시 30분, 셔틀버스 승강장에 교직원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교직원들이 향하는 곳은 대학동. 점심시간에만 운행되는 ‘대학동 고시촌 소상공인 상생버스’(이하 상생버스)를 타기 위해서다. 상생버스란 점심시간에 교직원들이 대학동으로 이동해 지역 식당에서 식사할 수 있도록 마련된 셔틀버스로, 공과대학(38동), 행정관 앞, 정문 등에서 탑승할 수 있으며 최근 입주가 시작된 고시촌 청년주택 인근까지 운행된다. 서울대학교와 지역사회가 함께 기획한 상생버스는 경기침체와 배달 문화 확산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학동 소상공인들의 운영을 돕고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도움을 주고자 마련되었다.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대학 구성원과 지역 상권 간의 선순환 구조를 지향하는 상생버스가 과연 지역사회에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까. 답을 확인하기 위해 여정을 함께해보았다.
대학동 고시촌 소상공인 상생버스 노선도
점심 한 끼가 만든 연결, 상생버스가 바꿔놓은 풍경
셔틀버스 승강장에서 상생버스에 오른 교직원들은 익숙한 캠퍼스 풍경을 뒤로하고 대학동을 향해 출발했다. 약 10분간의 짧은 이동 시간 동안 버스 안에는 교직원들의 조용한 기대감이 감돌았다. 상생버스를 처음 타봤다는 한 교직원은 “학교 게시판을 보고 상생버스 운행 사실을 알게 됐다”라며 “고시촌에 어떤 맛집이 있는지 궁금해서 한번 가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교내 식당의 긴 대기 줄을 피하고자 상생버스를 택했다는 교직원도 있었다. “점심시간에 식당 줄이 너무 길어서 외부로 나가는 게 더 효율적일 때가 있다”라며 “상생버스 덕분에 멀지 않은 곳에서 간편하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어 좋다”라고 말했다. 상생버스를 자주 이용하고 있다는 김상영 법학전문대학원 행정실장은 상생버스가 교직원들의 일상에 어떤 방식으로 스며들고 있는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학교 구성원 입장에서는 생협 식당도 좋지만 가끔은 외부의 다양한 메뉴가 생각나기도 하고 바깥 공기를 쐬며 기분 전환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라며 “대학동 소상공인을 돕는다는 취지에도 공감하고 있어서 주 2~3회 정도 꾸준히 이용 중”이라고 말했다. “막상 나가보면 생각보다 훨씬 식사하기에 좋은 식당들이 많고 서비스나 음식의 질도 대부분 만족스럽다”라며 “점심시간이 짧아 외부 식사가 부담스러울 수 있는데 상생버스가 식당 인근에 정차해줘서 오히려 교내보다 여유 있게 식사를 마칠 때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상생버스가 기능적 역할을 넘어 실질적인 편의성과 심리적 환기의 계기를 함께 제공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학동에서 하차해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 식당으로 향하는 유홍림 총장과 교직원들
상생버스는 교직원들의 일상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었는데, 변화는 버스가 멈춰 선 대학동 거리에서도 분명하게 감지되고 있었다. 오랫동안 이곳에서 국밥집을 운영해온 한 상인은 “요즘 들어 점심시간에 처음 보는 손님들이 오시는데, 들어보면 서울대 교직원들이라고 하신다”라며 “일부러 찾아와 주시는 것만으로도 반갑고 큰 힘이 된다”라고 전했다. 또 다른 상인은 “예전처럼 북적이지는 않지만, 외부 손님이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가게 분위기에도 작은 변화가 생겼다”라며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이어졌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한때 고시촌의 중심지였던 대학동은 상권의 중심축이 서울대입구역 인근으로 이동하며 점차 예전의 활기를 잃어갔다. 상생버스는 바로 그 경계에서, 작지만 실질적인 방식으로 지역 소상공인에게 숨통을 틔워주고 있었다. 점심 한 끼를 매개로 시작된 연결은 대학과 지역을 느슨하지만 의미 있게 잇는 새로운 실험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대학동 식당에서 식사하며 지역 소상공인들과의 상생을 실천하는 교직원들
지역과 상생하는 대학, 책임 있는 지역사회 구성원
서울대학교가 주도한 상생버스 사업은 상권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학동 일대 상권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고자 마련된 지역 연계형 사업이다. 관악캠퍼스가 위치한 관악구라는 같은 생활권 안에서 대학이 지역사회와 어떻게 상호작용할 수 있을지 고민 끝에 도출된 결과물이다. 서울대학교 총무과 강혜리 담당관은 “같은 관악구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시작한 일”이라고 밝히며 기획의 출발점이 지역 공동체 구성원들의 책임감에 기반했음을 강조했다. 수많은 대안 가운데 상생버스가 채택된 이유는 다른 대안들에 비해 빠르게 도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즉시성이 높았고, 시범 운영을 통해 지역사회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 확인한 뒤 사업 지속 여부를 유연하게 검토한다는 점에서 적절한 시범 사업으로 판단되었다. 실제로 점심시간에 학교 교직원들이 비교적 쉽게 대학동 상권에 접근할 수 있어서 접근성과 활용도 면에서 유의미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소비 진작의 의미 이상을 넘어 지역 상권과 연결통로를 마련함으로써 같은 지역에 있는 구성원 간의 상생을 실현하겠다는 상징적 의미도 담고 있다.
운영 과정에서는 교직원들의 상생버스 참여를 유도하는 방안들이 다각도로 논의되었다. 일례로 상생버스 이용자들의 선택을 돕는 ‘맛집 지도’를 제공하는 방안도 고려했지만, 특정 식당이 주목받으면 생길 수 있는 형평성 문제와 상권 내의 갈등 가능성을 고려해 보류하고 자율성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방침을 정리했다. 대학이 소비를 이끄는 주체가 아닌 공정한 관계의 조율자이자 중립적인 촉진자 역할을 하고자 내린 결정이기도 하다. 6월 20일까지 시범 운영되는 상생 버스는 5월 말에서 6월 초 사이에 이용자 수요와 만족도를 조사해 정식 사업으로의 전환 여부를 면밀히 검토할 예정이다. 향후에도 서울대학교는 지역 경제 활성화와 공동체 연계를 위한 다양한 협력 모델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대학과 지역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모색해 나갈 계획이다.
대학동 고시촌 소상공인 상생버스 개소식 현장 – 3월 14일,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
상생버스는 짧은 점심시간 동안 교직원들의 발걸음을 캠퍼스 밖으로 이끌며 침체한 대학동 상권에 작지만 분명한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교내 식당의 혼잡을 피하고 다양한 식사를 하고자 하는 교직원들의 수요와 손님이 줄어든 지역 상권의 필요가 맞물리며 자연스러운 연결이 만들어졌다. 특히 상생버스를 통해 외부 식사가 하나의 일상적인 선택지로 자리 잡아가면서 지역과 대학 사이의 물리적 거리뿐 아니라 심리적 거리도 점차 좁혀지고 있다. 서울대학교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지역 상인들의 환대가 더해지며, 점심 한 끼를 매개로 이어진 상생의 실험은 대학과 지역사회가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가능성을 조용히 그려나가고 있다.
서울대학교 학생기자단
전송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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