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전임 총장님, 총동창회장님, 이사장님과 이사님, 여러 대학의 총장님, 국회의원님, 주한 외국사절을 비롯한 내외 귀빈 여러분, 그리고 존경하는 은사님, 사랑하는 동료교수와 직원 및 학생 여러분!
저는 먼저 서울대학교의 발전을 위해 변함없이 베풀어 주시는 여러분의 성원과 노고에 깊이 감사드리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모교이자 대한민국을 선도하는 서울대학교의 총장직에 취임하려는 이 자리가 무척 영광스럽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겁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세계사적으로 이데올로기가 종언을 고한 현대사회의 이면에 국가이기주의적인 패권주의가 부활함에 따라 대한민국의 미래도 불안을 떨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우리는 물질적·경제적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였지만, 사회구조적·정신적 위기는 여전히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쌓여온 적폐들이 아직도 우리 주변을 떠돌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일수록 우리는 낡은 인식과 이념의 장벽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패러다임에 입각한 시대정신(Esprit du temps)에 부응해야할 역사적 소명을 부여받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공동체적 가치의 핵심인 공익, 공공성, 공동선(共同善, common good)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의 새로운 국가형성(nation-building)은 하늘이 무너져도 법과 원칙이 지배하는 정의로운(Fiat Justitia, Ruat Caelum) 사회로부터 출발하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이상과 현실을 아우르는 실존적 사고(existentialisme juridique)에 입각한 실천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대한민국은 건국 이후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자유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성공적으로 정착시켰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서울대학교는 국가발전을 견인해 온 인재들의 산실이었습니다. 우리는 지혜와 용기로써 조국의 나아갈 길을 밝혀왔습니다.
이러한 기여에도 불구하고 요즈음 서울대학교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이 결코 곱지만은 않습니다. 이는 국민들이 바라는 서울대학교의 모습과 현재 서울대학교가 처해 있는 상황이 괴리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서울대학교 가족 여러분!
저는 총장으로서 서울대학교가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사랑받고(SNU with People), 우리 구성원들의 자존심과 자긍심을 지키고(SNU with Pride), 변화된 환경에서 세계무대로(SNU with World) 새로운 도약을 이루어 내어야 할 책무를 부여받고 있습니다.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로는 법인 전환 이후 서울대학교의 좌표를 확립하는 일입니다. 국립대학법인 체제는 고등교육의 발전을 위한 새로운 모형입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의 미래상 구축을 위한 우리의 노력은 ‘새로운 대학의 창조(創造)’ 과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내외의 다른 대학을 따라가는 형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개척자적 자세로, 창조적 모델로 서겠다는 확고한 자기다짐이 필요합니다.
이제 서울대학교는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새로운 ‘서울대형 발전모델’을 제시해야 합니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대학자치의 이념에 따라 법인체제의 안정을 위한 거버넌스 혁신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저는 서울대학교 구성원들의 지혜를 모아 법인 체제에 부합하는 경영혁신을 이루고자 합니다. 불합리한 과거의 관행들을 과감하게 청산하고, 전문성(professionalism)을 존중하는 분권형 운영체계에 입각한 책임행정을 구현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대학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합니다. 대학은 교육과 더불어 연구의 장입니다. 서울대학교는 이제 세계 학술연구의 중심으로서 위상을 제고할 수 있는 기반을 확고히 해야 합니다. 세계 대학 리더(leader)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새로운 지식창조의 선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대학 연구행정과 운영에서 스마트한 혁신이 필요합니다.
서울대학교는 국가와 세계의 미래를 짊어진 창의적 역량과 의지가 굳건한 ‘선(善)한 인재’를 양성해야 합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훌륭한 인재는 지성과 함께 공공성으로 무장된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저는, 자긍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봉사하는 ‘선한 인재’, 정직하고 성실한 차세대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인성교육을 강화하겠습니다. 학문의 벽을 뛰어넘는 탈경계형(脫境界型) 통합적 지성을 함양한 인재, 세계시민으로서의 품성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고, 인간성 회복과 인간존엄성을 중시하는 교육모델을 창출해야 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대학원보다 학부에서 더 중시되어야 하는 만큼, 총장 임기 동안 학부 교육의 내실화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존경하는 서울대학교 가족과 대한국민 여러분!
서울대학교는 대한민국의 대학이자 대한국민 모두의 대학이기에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싱크탱크 역할을 수행하면서, 국민의 사랑을 받는 대학으로 자리매김해야 합니다. 국민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국가와 국민에 봉사하는 대학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대국민 지식 나눔 사업을 활발히 전개하겠습니다. 서울대학교가 사회적 이동성(social mobility) 제고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잠재력을 가진 소외계층과 소외지역의 인재를 적극적으로 발굴·육성하는 입시와 교육 제도를 마련해야 합니다. 온실 속에서 곱게 자란 화초 같은 인재 못지않게 국화와 같이 늦게 피지만 오상지절(傲霜之節)의 기개를 지닌 인재를 널리 발굴하여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는 선한 인재로 키우겠습니다. 또한 민족의 숙원인 통일 대업의 길에 서울대학교가 연구의 중심축이 되어 통일한국의 국가전략을 제시함으로써 미래 한국의 나아갈 바를 제시하는 선도적 역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서울대학교는 지구촌을 향해 당당히 포효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수준의 명문대학으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글로벌 정체성(identity)과 브랜드를 재정립하여 서울대학교형 교육·연구모델 확산의 초석을 다져야 합니다. 서울대학교 글로벌 대사관(SNU Embassy)을 구축하여 세계화의 지원기지로 활용하겠습니다. 아시아 아프리카에 대한 교육·연구 지원 프로그램의 제도화를 통해 세계사적 소명을 실천하는 서울대학교의 이념상(Leitbild)을 정립해 나가겠습니다.
친애하는 서울대학교 가족 여러분!
이러한 중차대한 서울대학교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우리 서울대학교 구성원 모두 ‘소통과 화합으로 변화와 혁신’을 도모해야 합니다. 저는 격변하는 전환기에 자기 혁신에 기반하여, 구성원들과 낮은 자세로 소통하며, 진정성과 도덕성을 존중하는 총장이 되겠습니다. 대학이 물신 숭배의 덫에 머물러서는 아니 됩니다. 구성원에 대한 무한 신뢰를 바탕으로 성과지상주의가 아니라 성과를 기다려 주는 리더십을 발휘하겠습니다. 또한 진실하고 겸손하며 선(善)한 자세를 잃지 않고자 합니다. 깊은 통찰력을 바탕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실천적으로 행동하며, 화합과 통합을 실천하는 총장이 되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자랑스러워하는 대학!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대학!
세계와 함께 하는 대학!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서울대학교의 미래상입니다. 이 비전을 이뤄내기 위해 땀과 눈물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어느 날 우리 서울대학교의 교목인 느티나무처럼 넉넉하고 믿음직한 학문공동체의 그늘 아래서 사람들은 말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거기에 서울대학교가 있어서, 지금 여기에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그 원대한 포부를 위해 오늘 저와 함께 작지만 위대한 첫발을 내딛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부족한 저를 격려하시고자 귀한 시간을 내주신 내외 귀빈과 서울대학교 가족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