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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위한 과학

2015.02.25.

한 과학자의 끈기와 열린 마음이 불가능을 희망으로 만들었다. 질병 치료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유재훈 화학교육과 교수를 만났다.

유재훈 교수
유재훈 교수

끈기, 에이즈 완치를 꿈꾸다
1980년대 초 미국 의사들이 처음으로 ‘후천성 면역 결핍 증후군(AIDS)’에 대해 보고했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1)에 감염된 상태에서 인체의 면역력이 저하되어 각종 질환에 감염되 는 병이다. 치료법의 개발로 생존률은 높아지고 있지만, 문제는 부작용이다. 치료제의 독성이 매우 심해 10년 정도 장기 복용할 경우 간의 대부분을 파괴한다.
수시로 변화해 치료가 더욱 어려운 HIV-1. 이를 박멸할 신약후보물질이 유재훈 화학교육과 교수 연구실에서 탄생했다. 독성이 매우 적은 펩타이드를 이용해 장기간 복용해도 간에 크게 무리를 주지 않는 것은 물론, 기존 약과는 전혀 다른 방식을 사용해 내성을 지닌 바이러스도 치료할 수 있다. “HIV-1 는 유전자 자체가 RNA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치료 물질이 바이러스의 생존에 필요한 RNA인 TAR RNA를 공격해야 하는데, 치료 물질을 세포 내로 전달하는 것이 쉽지 않아 이 분야의 연구가 지지부진했어요. 그러던 중 HIV-1를 강력하게 저해하는 펩타이드를 찾아냈습니다.” 유 교수의 연구팀이 개발한 펩타이드는 HIV-1에 감염된 세포 안으로 스스로 들어가 바이러스의 증식을 막는다.

열린 마음, 새로운 가능성을 찾다
연구가 성공하게 된 데에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이번 연구의 핵심인 세포투과성 펩타이드는 7~8년 전 유 교수의 실험실에서 이미 만들었던 물질이다. “별다른 특성을 발견하지 못하고 보관만 해왔어요. 2년 전 다른 교수와의 토론 중 이 펩타이드의 특별한 잠재능력을 감지했죠. 또 한 번의 실험이 놀라운 발견으로 이어졌습니다.” 타 분야의 과학자와 나눈 폭 넓은 교류가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낸 것이다.
화학은 생물, 물리, 의학 등 여타 학문과의 교류가 활발히 진행될 수 있는 학문이다. 우리가 문명이라는 이름 하에 누리고 있는 것들이 실은 다양한 화학 원료가 혼합된 물질에서부터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화합물을 만들고 그것의 성질을 알면, 이를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물질을 합성해 새로운 작용물질을 만들어내는 일은 화학자들의 평생업이자 능력이에요. 화합물은 지금 당장 유용하지 않더라도, 차후 과학적으로 훌륭한 연구 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다학제학문과 통섭의 가치가 강조되는 시대에 이와 같은 화학자의 노력이 더욱 주목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 크게 보고, 널리 생각하라
하나의 약물을 개발하는 데 약 1조 이상의 비용이 들어간다. 천문학적인 투자에도 여전히 신약 개발은 쉽지 않다. 치료 물질이 인체의 세포나 조직 안으로 들어가야 제대로 역할하는데, 그렇지 못해 신약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유 교수의 기술은 HIV-1는 물론 다른 질병 치료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는 현재의 연구 결과는 진행형이므로 앞으로 보람있는 일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저희가 개발한 세포 투과성 펩타이드를 약물 자체로도 쓸 수 있지만, 전달 물질(drug carrier)로 사용한다면 수많은 약을 신약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습니다. 에볼라 바이러스(Ebola virus), 항암제에 내성을 가진 암세포 치료 등에도 탁월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과학자는 흔히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연구에 몰두하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유 교수에게 과학이란 무엇일까? “과학자의 자질을 본인이나 한정된 주위 사람을 위해서만 쓰려하지 말고, 좀 더 크고 멀리 생각하며 사용하면 좋겠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인식을 바꾸면 과학은 몇 백만 명을 살릴 수 있는 빛이 됩니다.” 질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등불을 켠 유재훈 교수. 그에게 과학은 인류에게 희망을 전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필요한 수단으로 존재한다.

◆ 유재훈 화학교육과 교수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1)를 치료하는 신약 물질을 찾아낸 과학자. 이번 연구 결과는 ‘HIV-1 바이러스의 전사를 억제하는 세포투과성 펩타이드’라는 제목으로 화학 분야의 세계적 학술지인 <앙게반테 케미(Angewandte Chemie)>에 게재됐다.

◆ 미니 인터뷰
보람
“별 생각 없이 실험실에 들어왔다가 일을 조금씩 배워가면서, 진짜 과학자가 되어가고 있는 젊은 학생들을 볼 때.”

좌절
“뛰어난 연구 능력을 갖췄음에도 꿈에 대한 도전은 하지 않고, 본인을 위해서만 재능을 쓰는 학생들을 볼 때.”

잘 굴러가는 실험실
“실험실 단위는 작은 사회. 구성원이 자신의 실험 이외에 공통적으로 실험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후퇴하는 실험실
“실험실 청소를 연구원끼리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결국 공간이 더러워지는 것처럼, 실험실에서 나를 위해 무언가 해주기만을 바라는 사람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