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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도 예술처럼, 이순재 동문

2015.02.23.

이순재 동문과 김동원 학생
이순재 동문과 김동원 학생

반 세기 넘도록 예술로서의 연기를 선사한 원로 배우의 인생을, 비슷한 길을 걷는 후배가 좇았다.

Interview 두 남자의 철학, 예술, 그리고 연기

김동원 전공으로 철학을 선택하신 이유를 말씀해주세요.
이순재 철학이란 학문은 굉장히 광범위합니다. 전후 혼란했던 당시 서울대학교 철학과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석학들이 있었어요. 한국 철학의 길을 닦은 고형곤 박사, 우리나라 최초로 헤겔 변증법을 강의한 박종홍 박사, 칸트 철학의 대가였던 최재희 박사 등 장안 최고의 학과에서 이 훌륭한 양반들의 냄새만 맡고 졸업해도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겠거니 생각했어요.

김동원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순재 당시 대학생들의 취미는 굉장히 제한적이었습니다. 뮤직홀에 가서 종일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는 게 전부였죠. 그때 세계 각국의 좋은 영화들을 많이 봤어요. 이태리의 네오리얼리즘 계열의 영화, 불란서의 누벨바그 영화, 셰익스피어 원작의 영화 같은 작품들이죠. 그러다 2학년 2학기 때 영국의 대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Laurence Olivier가 연출·출연한 ‘Hamlet’(1948)이란 영화를 봤는데 ‘이건 예술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만해도 배우라는 직종을 ‘딴따라’라고 하며 천대했는데, 이 사람은 연기라는 행위로 경(Sir) 작위를 받았거든요. ‘연기가 예술적 창조 행위’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김동원 선생님께서 활동을 시작하셨을 때는 배우에 대한 인식도 거의 드물었을 텐데요. 연기 공부하기가 쉽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이순재 외국 잡지를 뒤져가면서 리서치를 했어요. 그리고 영화를 볼 때 관심 가는 배우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분석했습니다. 캐롤 리드Carol Reed 감독이 연출한 ‘The Third Man’(1949)은 하루에 4번을 연달아 봤어요. ‘Odd man out’(1947)은 7번 보며 거의 대사를 다 외다시피 했고요. 이렇게 마니아가 되면서 점차 연기에 빠지기 시작한 거죠. 이때 연세대, 고려대 학생들과 함께 ‘극단 실험극장’이라는 동아리 활동을 했었습니다. 국어사전 펴 놓고 발음부터 연출, 극에 관한 학문적 토론까지 특별한 선생 없이 독학했지만 정말 철저하게 학습했어요.

김동원 1956년도에 데뷔하신 후 벌써 60년이 흘렀습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좋은 연기’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이순재 연기라는 게 본인 스스로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고, 관객이 평가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어느 면에선 동일할 수 있지만, 조금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행위의 잘잘못은 본인이 제일 잘 알지 않습니까. 자기 기준이 뚜렷하면 객관적으로 높이 평가 받거나 평가 절하되거나 크게 흔들릴 일이 없어요. 그래서 높은 기준으로 항상 자기 역할과 행위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합니다.

김동원 연극 ‘시련’(2014)을 연출하시고, ‘유민가’(2015)에 출연하시는 등 서울대학교연극동문회 극단인 관악극회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계십니다.
이순재 현재 서울대학교연극동문회 1기 회장을 맡고 있는데, 아마 회장직은 곧 물려주더라도 관악극회 활동은 언제든 기회가 되면 함께하고 싶어요. 일종의 의무사항이랄까요. 배우라는 건 학벌에 크게 상관 없습니다. 서울대학교 나왔어도 연기 못하는 사람도 많죠. 저에게는 서울대학교에서 수학하며 얻은 학문적 자존심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큰 바탕이 됐습니다.

김동원 TV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서 ‘무엇이든 공부하고 바라보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라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이순재 학생 때 어학 공부를 많이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어학 능력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인생의 큰 장점이 됩니다. 또 배우로서 어학 능력을 키우는 건, 작품의 원전을 보는 데도 대단히 필요한 일이죠. 번역된 책으로도 극의 내용을 이해할 수 는 있지만, 자율적으로 원전을 보고 공부하며 분석해서 하는 연기와는 차이가 나기 마련입니다.

김동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신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순재 열심히 연기하는 사람. 지금껏 외적 조건에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한때 국회의원을 할 때만해도 이건 본직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적당한 시기엔 돌아가야겠다는 의지가 있었어요. 배우는 제 천직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한 컷이 주어지더라도 꾸준히, 제대로 해왔습니다. 그러다보면 현업에서 같이 작업하는 스태프들이나 주변 선후배들이 보고, 뭔가 느끼는 게 있겠죠.

배우 이순재

배우 이순재

1954년 서울대학교 철학과 입학, 재학 중에 봤던 영화에 감명을 받아 연극을 시작했다. 서울대연극회를 재건했고, 1956년 ‘지평선 너머’로 정식 데뷔했다. 제14대 국회의원이었으며, 60년간 연극, 영화, 드라마, 시트콤, 예능 등을 넘나들며 그 존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원로 국민 배우다.